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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재정 손실 4000억… 정부, 약가인하 소송 남발 막는다

홍석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2.05 17:17

수정 2021.12.05 19:44

약가인하 지연 꼼수 방지 차원
건보법 개정안 법사위 상정 앞둬
'정부 승소 때 손실분 징수' 골자
제약사 "재판청구권 침해" 반발
건보재정 손실 4000억… 정부, 약가인하 소송 남발 막는다
#. 오리지널 의약품 B를 판매하는 A제약사는 제네릭(복제약)C가 건강보험급여 등재되면서 약가가 기존 100원에서 70원으로 인하조치됐다. 하지만 A제약사는 특허권 침해 판단이 필요하다면서 정부를 상대로 집행정지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년뒤 A제약사는 소송해서 패소 판정을 받았다. 약가 인하 후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A제약사가 1년간 B약품에 대한 건강보험 청구한 금액은 10억원이다. A제약사의 소송제기로 3억원의 건보재정 누수가 발생한 셈이다.

A제약사의 사례처럼 보험약제 관련 행정조치에 대해 제약사들이 집행정지를 포함한 행정소송 제기하면서 불필요한 건강보험재정이 누수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2018년 이후 제약사 보험약제 관련 소송 제기로 누수된 건강보험재정 손실액은 약 4000억원에 달한다. 현행법에서는 제약사가 제기한 집행정지 이행 시 판결때까지 보험약가 인하 등의 처분 집행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약가인하 적법시 제약사에 손실액 징수

5일 국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정부는 보험약제 관련 제약사의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집행정지기간 발생한 손실을 향후 징수·환급하는 '약가소송 집행정지 환수·환급'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관련 법안은 보건복지위원회 법안 심사를 통과했고, 이달 법제사법위원회 상정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은 약가인하 등 보건복지부 고시와 관련해 제약사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된 이후 본안 소송에서 원 고시가 적법한 것으로 판결이 확정될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약사로부터 손실액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대로 집행정지 결정 없이 원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이 확정될 경우, 건보공단이 제약사가 입은 손실 상당액을 환급해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제약사가 행정소송을 제기한 기간동안에 약가에 대한 부분을 추후 정산하겠다는 것이다 .

정부가 추진하는 보험약가 환수·환급제도 대상은 △약가인하 △건강보험급여 정지·제외 △급여기준 축소 처분 등 약제 관련 모든 처분이 대상이다. 손실액은 약가인하의 경우 쟁송기간 동안 사용량에 기반해 징수액과 환급액이 결정된다. 급여 정지·급여 축소의 경우에는 처분 직전 기간 동안 청구량을 고려해 요양급여비용의 40%를 징수·환급토록 하고 있다. 이번 법안과 관련해 약가 소송 및 집행정지로 인한 건보재정 손실분을 보전하면서도 위법한 처분에 대한 제약사의 손실 보전을 가능토록 했다는 것이 보건당국의 설명이다.

■최근 10년 보험약제 관련 소송 59건

정부가 건보법 개정안에 나서는 이유는 제약사들이 보험약제 관련 처분에 대한 적법성을 다투기보다는 처분 지연을 위한 방편으로 행정소송을 활용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올해 10월 복지위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 등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보험약제의 약가·급여 관련 처분에 대해 총 59건의 행정소송이 제기됐으며 최근들어 소송이 증가해 2018년 이후 제약사가 제기한 소송은 4년간 40건에 달한다. 제약사의 소송 남발로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돼 원 처분이 지연되면서 발생한 재정 손실 추산액은 약 4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오리지널 약가인하 소송 21건 중 정부 패소사례가 없음에도 제약사들이 특허권 침해 판단 필요 등 다양한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를 신청한 상황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개정안은 제약사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재정과 제약사 손실 모두 균형있게 사후 정산하는 기전을 마련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대한 법원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약업계, 재판청구권리 침해 우려

하지만 제약사의 반발이 거세다.
기업의 정당한 권리구제 수단인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제약사의 주장이다. 또한 집행정지에 따른 손실을 강제로 환수하는 것은 사실상 법원의 결정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건보공단 관계자는 "수 십건의 약제 소송별로 본안 판결 후 제약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면서 "개정안은 소송결과에 따라 집행정지로 인한 손실(이익)을 사후에 정산하겠다는 취지이지 소송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hsk@fnnews.com 홍석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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