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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인간의 품격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2.14 18:30

수정 2021.12.14 19:00

[서초포럼] 인간의 품격
"사실 저에겐 나쁜 버릇이 있어 남의 과실을 캐내고 의심하며 엉뚱한 억측을 하곤 하는데… 잘 판단하셔서 이런 망측한 추측에 개의치 마시고 고민하지 마십시오. 암만 생각해봐도 이 소문은 말씀 안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장군님의 기분만 상해드리고 유익하지도 않을뿐더러, 저로서도 남자답지 못하고, 불성실하고 천박한 사람이 되고 말테니까요." ('오셀로')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는 혁혁한 전공을 세운 흑인 장군 오셀로와 순진한 백인 처녀 데스데모나가 온갖 편견을 넘어 이룬 사랑을 다룬다. 그러나 사악한 부하 이아고의 계략과 질투로 인해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고 결국 아내를 죽이는 참담한 비극적 결말로 이어진다.

위 대사는 이아고가 자신은 근거 없는 억측과 의심을 하는 못된 버릇을 갖고 있는데, 최근에 들은 소문은 오셀로 장군이 알게 되면 전혀 유익하지 않고 해악만 끼칠 것 같아,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오셀로는 기어이 그 소문을 얘기해 달라고 명하고, 이아고는 마지못해 말하는 척하면서 데스데모나에 대한 날조된 불륜을 늘어놓는다.

이아고의 언술 전략은 가스라이팅 수법처럼 상대의 궁금증을 극대화해 사실이 아닌 억측을 진실로 믿게 만든다.
의심하지 말라고 말하여 의심을 유발하고, 질투하면 안된다면서 질투를 유발시키는 교활한 언술이다. "조심하십시오. 장군님, 질투라는 놈을."

이아고는 정직이라는 가면을 쓰고 흉악한 음모를 성공적으로 추진한다. 그에게 타인을 위해 충성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추구하는 자가 똑똑한 인간이다. 그는 치밀한 계산에 의해 거짓말과 상황을 꾸미고 그 추진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사이코패스)이다.

반면 오셀로는 모든 걸 곧이곧대로 믿으며 사람은 정직하고 진실만을 말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다. 그의 눈에 이아고는 성실하고 정직한 부하이다. 그래서 그는 이아고의 간교한 언술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그 현란한 거짓말에 놀아난다. 근거가 전혀 없는 거짓말에 속는 것은 오셀로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소외감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으로서 베니스의 영웅이 되었고, 데스데모나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의 명성에 기대어 사랑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아고에 의해 그 사랑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자 두려움에 휩싸이고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의심한 그의 환상은 걷잡을 수없이 커진다.

왜 이아고 같은 악마가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아름다운 사랑에 비극적 운명을 초래하게 했는지 알 수 없다. 이아고의 거짓말에 두 사람의 지극한 사랑은 비극이 되었지만 오셀로는 자신의 모든 걸 바쳐 데스데모나를 사랑했다. 그러한 그가 자신의 과오를 뒤늦게야 깨닫는다.
다시 예전의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장군으로 우뚝 선다. 인간의 존엄성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때, 그 실수에 대해 자발적 희생을 감내할 때 회복된다.
그 깨달음의 순간 과오를 수용하는 용기를 보여줄 때 인간의 품격이 살아난다.

변창구 경희사이버대 총장
box5097@fnnews.com 김충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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