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이건희 컬렉션의 나비효과, 한국 미술시장 날아오르다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2.27 16:53

수정 2021.12.27 18:20

2021 미술계 결산
세계 미술계 팬데믹 충격 속에도
국내는 이건희 소장품 기증 이후
관심 쏠리며 미술품 구매심리 폭발
NFT 등 온라인으로 영역 확장도
지난 4월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대구미술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을 소개하는 특별전 '웰컴 홈: 향연(饗宴)'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뉴스1
지난 4월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대구미술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을 소개하는 특별전 '웰컴 홈: 향연(饗宴)'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뉴스1
2021년 한국 미술계는 여느 해보다 역동적이었다. 전 세계는 여전한 팬데믹으로 미술관과 비엔날레, 갤러리 모두 멈췄지만 한국의 미술시장 만큼은 아이러니하게도 홀로 승승장구했다. 역대 최대 불황을 맞이했던 2020년 미술시장은 올해 억눌려 있던 미술품 구매 심리가 폭발하면서 반등했다.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인 이중섭의 '황소'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인 이중섭의 '황소'

■'이건희 컬렉션'의 나비 효과

지난해 10월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남긴 소장품 수만점이 올해 국가에 귀속됐다.
지난 4월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은 소장품 2만3000여점을 조건 없이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이번에 기증된 소위 '이건희 컬렉션'에는 국보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모네, 샤갈, 피카소, 고갱, 달리 등 서구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되면서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에 부응해 이건희 소장품을 받은 전국 미술관들은 특별 공개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가장 많은 기증품을 받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7월부터 특별전을 진행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에서도 이건희 컬렉션전을 개최했다.

한편 '이건희 컬렉션'은 지역간 문화 불균형 문제 또한 불거지게 만들었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별도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주문하면서 '이건희 기증관' 설립에 대한 논의가 본격 시작됐고, 지방자치단체들은 서울과 지역간 문화 불균형 해소를 주장하며 기증관 유치 경쟁에 나섰다. 그러나 최종 부지는 서울 송현동으로 낙점됐고 이후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과 함께 반발이 이어지고 있어 실제 건립까진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은 현금 대신 문화재와 미술품으로 세금을 낼 수 있게 하는 '미술품 물납제' 논의에도 동력을 제공했다. 지난해 재정난에 시달리던 간송미술관이 보물 2점을 경매에 내놓으면서 촉발된 '미술품 물납제'는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더욱 힘을 얻으면서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 오는 2023년 1월 이후 상속 개시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미술 작품'을 향해 오픈런… 미술시장 '후끈'

초유동성의 시대, 투자처를 잃은 자금들이 미술시장까지 흘러들어왔다. 문화적 욕구와 구매력을 갖춘 MZ세대가 본격적으로 미술품 구입에 관심을 가지면서 올 한해 국내 주요 아트페어의 미술품 판매액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술품 경매 낙찰액도 큰폭으로 올랐다. 한국 미술시장의 성장에 해외 유수의 갤러리들도 연이어 국내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나흘간 진행된 국내 최대 미술장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는 팬데믹 속에서도 8만8000여명의 방문객이 찾았다. 페어 기간 동안 이곳에서 팔려나간 미술품의 판매액은 650여억원. 코로나19 확산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열지 않은 2020년을 제외하고 직전이었던 2019년 방문객(8만2000명)을 훌쩍 넘었을뿐 아니라 판매액(310억여원)도 두 배를 넘었다. KIAF의 흥행은 예고된 것이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된 '아트부산'은 판매액 350여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아트페어가 열리는 곳곳마다 명품 매장 앞에서나 볼 수 있는 '오픈 런' 현상이 벌어졌다. 27일 예술경영지원센터 자료에 따르면, 올해 미술품 거래 총액은 약 9223억원으로 지난해 3849억원, 재작년 4146억원에 비해 2배 넘게 시장 규모가 커졌다. 경매 낙찰총액 역시 약 3285억원으로 지난해(1153억원)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러한 시장의 성장세에 해외 미술시장의 큰손들도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독일의 쾨닉 갤러리가 서울 청담동에 분점을 냈고, 10월에는 오스트리아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이 한남동에 새로운 지점을 열었다. 한편 내년에는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 LA에서 아트페어를 개최하는 프리즈가 한국에 진출해 한국 화랑협회와 함께 KIAF 이후 새로운 아트페어를 시작한다.

한편 올 한해 미술시장 영역은 온라인으로도 확장됐다.
기존의 갤러리와 경매, 아트페어를 기반으로 미술품 거래가 이어지던 방식을 넘어 온라인 상에서 미술품을 공동투자할 수 있는 플랫폼들이 등장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아트와 가상 자산을 접목한 NFT(대체불가토큰) 아트와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작품들이 등장하고 실제 거래가 이뤄지면서 새로운 미술시장의 문이 활찍 열렸다.
미술계 한 관계자는 "해외의 유명 경매회사인 크리스티는 올해부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을 결제 수단으로 허용하기 시작했다"면서 "메타버스 안에서 온라인 기반의 작품이 증가하고 또 가상자산이 유입되면서 내년에는 또 다른 차원의 미술시장 성장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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