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30대의 젊은 '리어' 창극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2.23 19:56

수정 2022.02.23 19:56

[서울=뉴시스] 23일 오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창극 '리어'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사진 왼쪽부터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정영두 연출, 소리꾼 유태평양, 소리꾼 김준수, 배삼식 작가, 이태섭 무대디자이너, 한승석 음악감독. (사진=국립창극단 제공) 2022.02.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 23일 오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창극 '리어'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사진 왼쪽부터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정영두 연출, 소리꾼 유태평양, 소리꾼 김준수, 배삼식 작가, 이태섭 무대디자이너, 한승석 음악감독. (사진=국립창극단 제공) 2022.02.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이 우리 고유의 전통 판소리를 덧입고 창극으로 재탄생된다. 노년의 미치광이 리어왕은 창극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국립창극단은 다음달 17일부터 27일까지 창극 '리어'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

무용과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는 정영두가 연출과 안무를 맡았고 한국적 말맛을 살리는데 탁월한 극작가 배삼식이 극본을 맡았다.
음악은 창극 '귀토'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에서 탄탄한 소리의 짜임새를 보여준 한승석이 작창했고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이 작곡했다. 그야말로 드림팀이다.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복장터지는 일도 많고 인간의 추악한 욕심과 욕망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요즘, 이 시대에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선택하게 됐다"며 "소리하는 사람으로서 들어보니 정말 잘 나왔다. 정말 만들었단 얘기를 들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비쳤다.

창극 '리어'는 시간이라는 물살에 휩쓸려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2막 20장에 걸쳐 그려낸다. 창극을 위해 극본을 새롭게 집필한 배삼식 작가는 삶의 비극과 인간에 대한 원작의 통찰을 물(水)의 철학으로 일컬어지는 노자의 사상과 엮어냈다. 리어와 세 딸, 글로스터와 두 아들의 관계를 통해 서로의 욕망을 대비시키면서 세대와 관계없이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한다. 배 작가는 "'리어'는 우리 모두가 잊고 싶어하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하는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라며 "마지막 앞에 섰을 땐 밉던, 예쁘던, 선하던, 악하던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애달프고, 살아있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 존재인지 알게된다. 이 비극을 통해 제가 바라는 것은 소멸할 수 밖에 없는 그 마지막 앞에선 존재들을 우리가 가여워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 수 있길 바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배 작가는 "작품의 이름을 '리어 왕'이 아닌 '리어'로 한 것은 인간으로서 '리어'를 보기 위해서"라고 부연했다.

첫 창극 연출에 도전하는 정영두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극 중 인물을 선악으로 구분하지 않고 각자의 생을 살아내고 욕망을 위해 투쟁하는 인간의 본성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정 연출은 "변화무쌍한 물결 위에 서로의 마음이 갈라지고 뒤엉켜 흐르는 여정"이라며 "고요해지지 않으면 들여다볼 수 없는 물처럼 흐려지기 쉬운 인간의 마음을 '리어'라는 인물을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국립창극단 '리어' 포스터 /사진=국립극장
국립창극단 '리어' 포스터 /사진=국립극장
맛깔스러운 대사에 묵직한 사유를 담고 있는 배삼식의 극본은 한승석, 정재일의 음악과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작창가 한승석은 상하청을 넘나드는 음과 부침새를 다채롭게 활용한다. 증오와 광기, 파멸 등 비극적인 정서를 담은 무게감 있는 소리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면서도 '장기타령', 서도민요 중 '배치기' '청사초롱' '투전풀이' 등 대표적인 경기민요를 장면에 맞게 차용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작품 분위기에 활기를 불어넣고 소리 색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었다. 작곡을 맡은 정재일은 국악기와 서양 악기가 어우러진 13인조 구성의 음악과 가상악기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앰비언트 사운드를 절묘하게 조합해 작품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한승석은 "개인적으로 저의 첫 앨범에 참여했던 배삼식 작가, 정재일씨와 다시 한 팀으로 작업하게 돼 기뻤다"며 "국악과 양악의 콜라보를 통해 기존에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음악적 어법을 확장시킬 수 있게 돼 뿌듯하다"고 밝혔다.

한편 무대는 고요한 가운데 생동하는 물의 세계로 꾸며져 거대한 자연 앞에서 연약한 인간의 존재를 보여준다. 달오름극장 무대 전체에 20톤의 물이 채워질 예정으로 수면의 높낮이와 흐름이 변화하며 작품의 심상과 인물 내면의 정서를 드러낸다. 제31회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한 무대미술가 이태섭을 필두로 창극 '패왕별희'에서 감각적인 조명디자인을 선보인 조명디자이너 마선영, 연극·무용·오페라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하는 의상디자이너 정민선 등이 합세해 무대 미학을 완성한다.

이태석 감독은 "원작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은 리어왕이 실성한 채 황야를 헤매는 장면인데 그 순간의 흔들리는 대지와 검은 하늘, 폭풍우를 물이라는 중심이미지로 치환해 보여주려 한다"며 "잔잔한 물이 흔들리고 반사되고, 왜곡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화려한 제작진만큼이나 고정관념을 과감히 깬 캐스팅도 눈길을 끈다. 국립창극단 간판스타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각각 '리어'와 '글로스터' 역을 맡았다. 이들은 '나이 듦'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인물이 처한 상황에 집중하며 분노와 회한, 원망과 자책으로 무너지는 인간의 비극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두 배우는 밀도 높은 감정선으로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든 저런 상황이라면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관객의 공감을 끌어낼 예정이다.
'작은 거인' 민은경은 코딜리어와 광대를 오가는 1인 2역 연기를 펼치며 극과 극의 매력을 펼친다. 이외에도 이소연·왕윤정·이광복·김수인 등 국립창극단 배우들의 다채로운 면면과 조화로운 호흡을 엿볼 수 있다.


주인공 '리어' 역의 김준수는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리어와는 다른 젊은 리어의 모습인데 늙음과 젊음에 상관없이 인간의 본연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려 한다"며 "이미지적인 부분이 아닌 김준수가 이끌어낸 리어의 모습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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