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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천후 전폭기의 레전드 'F-4 팬텀'(상) [밀리터리 동서남북]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09 23:58

수정 2022.08.13 13:50

[파이낸셜뉴스]
전천후 전폭기의 레전드 'F-4 팬텀'(상) [밀리터리 동서남북]
F-4 팬텀 II(McDonnell Douglas F-4 Phantom II). 미국은 전투기의 이름을 통일하면서 ‘F4H 팬텀 II’를→‘F4 팬텀 II’라고 부르게 되었다. 최종 개량형인 F-4E를 기준으로 ⦁전장 19.2m ⦁승무원 2명 ⦁최고속도 마하 2.23 ⦁항속거리는 2700Km ⦁전투행동반경 680Km ⦁최고 고도 18.3Km ⦁최대 폭장량은 8.5t ⦁하드포인트 9개에 각종 폭탄과 미사일 핵폭탄까지 장착이 가능하다. 부무장 20mm 캐틀링 건. 사진=공군·국방부
F-4 팬텀 II(McDonnell Douglas F-4 Phantom II). 미국은 전투기의 이름을 통일하면서 ‘F4H 팬텀 II’를→‘F4 팬텀 II’라고 부르게 되었다. 최종 개량형인 F-4E를 기준으로 ⦁전장 19.2m ⦁승무원 2명 ⦁최고속도 마하 2.23 ⦁항속거리는 2700Km ⦁전투행동반경 680Km ⦁최고 고도 18.3Km ⦁최대 폭장량은 8.5t ⦁하드포인트 9개에 각종 폭탄과 미사일 핵폭탄까지 장착이 가능하다. 부무장 20mm 캐틀링 건. 사진=공군·국방부
세계의 하늘을 지배했던 F-4 팬텀 II(McDonnell Douglas F-4 Phantom II)는 미국의 다목적 전폭기로 대공 및 대지상 임무, 적 방공망에 대한 대공제압 임무, 정찰 임무 등을 수행한다. 명칭의 유래는 환영, 혹은 유령이란 의미의 팬텀(Phantom)이다.


전폭기는 '전투폭격기(Fighter-Bomber)'의 줄임말이다. '전투폭격기'란 '전투기+폭격기'의 목적을 가진다. 공대공 전투(공중전)와 폭격 임무를 같이 수행할 수 있는 군용 비행기를 일컫는다.

2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기술의 한계로 전투기와 폭격기의 역할은 분리되어야 했지만, 쌍발 엔진을 장착한 중전투기가 폭장을 달고 장거리 타격 임무를 수행하면서 전폭기의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술기의 능력이 향상되면서 전투기와 폭격기 양면의 능력을 동시에 부여하는 경향이 보인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기술이 발달하고 전투기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폭격기의 역할이 급감하게 된다.

1950년대 중 후반부터 1960년대 들어서 공대지 무장의 정밀화가 이루어진다. 무유도 항공 폭탄도 향상된 조준장치로 높은 명중률을 가지게 됐다.

현대의 합동정밀직격탄(JDAM, Joint Direct Attack Munition) 등의 유도 폭탄은 30m급 원형공산 오차(CEP, Circular Error Probability, Circular Error Probable : 탄도학, 무장 정밀도 측정 단위) 95% 수준의 신뢰성 높은 타격 성공률을 보인다. 폭격기로 일시에 많은 폭탄을 쏟아부어 광역을 제압을 하는 식의 운용은 구식이 됐다.

폭격기보다 소형인 다목적 전술기가 정밀하게 지상공격을 가하면 운용비 역시 줄어든다. 점진적인 시대적 변화에 따라 전폭기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던 것이다.

대형 다목적 전투기는 폭장량이 우월하고 폭격기로써의 성향이 강하며 전반적으로 전술폭격기의 역할을 대신해 전투폭격기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개념으로 '이중목적전투기(Dual-role Fighter, 듀얼-롤 파이터)' '전환임무전투기(Swing-role Fighter, 스윙-롤 파이터)' '타격 전투기(Strike Fighter, 스트라이크 파이터)' '다목적 전투기(Multirole Fighter, 멀티롤 파이터)' 같은 말도 있다.

즉 전투폭격기는 다목적 전투기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전투기+공격기'의 성향을 가지는 전투기를 말하는 '전투공격기(Fighter-Attacker)'와 사실상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F-4N 팬텀 II 함상전투기. 2차 세계대전 중 대일(對日) 의지를 다지는 의미로 '가라앉는 태양'을 상징한 '선다우너즈(Sundowners)' 도장이 미익에 입혀져 있다. 항공기 동체가 매우 커 내부에 7022L(1855갤런)의 연료를 적재 가능하며, 동체 하부에 4개의 무장장착대가 부착돼 있다. 저익 구조로 설계된 주익은 삼각형의 테이퍼(Taper)형태이며, 주익의 내측은 연료 탱크로 사용되고 외측은 접히도록 설계되어 함상에서 적재공간을 적게 했다. 미익은 보조익과 연동되는 방향타(Rudder)가 있으며, 23도의 하반각을 가
F-4N 팬텀 II 함상전투기. 2차 세계대전 중 대일(對日) 의지를 다지는 의미로 '가라앉는 태양'을 상징한 '선다우너즈(Sundowners)' 도장이 미익에 입혀져 있다. 항공기 동체가 매우 커 내부에 7022L(1855갤런)의 연료를 적재 가능하며, 동체 하부에 4개의 무장장착대가 부착돼 있다. 저익 구조로 설계된 주익은 삼각형의 테이퍼(Taper)형태이며, 주익의 내측은 연료 탱크로 사용되고 외측은 접히도록 설계되어 함상에서 적재공간을 적게 했다. 미익은 보조익과 연동되는 방향타(Rudder)가 있으며, 23도의 하반각을 가진 전 가동식(All Moving) 승강타(Stabilator)가 있다. 동체 양 옆으로 17900Ibs 추력의 제네럴 일렉트릭의 J79-GE-17 터보제트 엔진 2대를 장착 하고 있으며, 주익 상부의 동체에 있는 장방형의 공기흡입구는 공기 속도에 따라 조절되도록 되어있다. 사진=미 해군(U.S. Navy)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새로운 함재기가 필요해졌다. 1953년 미국은 항공모함에 탑재할 항공기의 입찰을 개시했고 여러 회사가 미국의 차세대 항공기를 개발하기 위해 경쟁을 시작했다.

맥도넬 더글러스사는 미 해군이 입찰을 낼 것을 사전에 예상하고 공고를 내기도 전부터 항공모함에 적합한 차세대 해군 함재기를 이미 개발하고 있었다.

항공모함 함재기는 항모 갑판에서 이·착함(항공모함에서 이륙과 착륙)이 가능해야 하기에 일반적인 공군용 전투기에 비해 제한사항이 많았다. 짧은 이륙거리와 비행체의 크기도 제한된다. 당시 경쟁사들은 기존의 함재기를 개량하는 방향으로 더 나은 함재기를 제작하고자 했지만 맥도낼 항공은 설계단계에서부터 신기종으로 기존의 함재기에 비해 훨씬 크고 빠르고 강력한 함재기 기체 개발에 착수한다.

하지만 1953년도의 첫 입찰에서 챈스-보우트의 YF8U-1에 밀린다. 새로운 개념의 전투기를 구상하던 맥도넬 더슬러스사는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미 해군측은 이 뛰어난 스펙의 항공기를 내심 흡족해했고 맥도넬 더글러스사의 제안서를 재검토하기로 한다. 1954년 10월 18일 시제기 2대에 대한 가계약을 추가적으로 체결하게 된다. 그러한 이유는 당시 미국은 현대와 같은 크기의 대형항공모함이 아니었으나 이때부터 대형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더 큰 함재기를 수용할 수 있게 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 맥도넬사의 선견지명이 맞아떨어졌다.

당시로서는 대형기체로 대단한 스펙인 최고속도 마하(음속) 2 이상의 속도로 비행이 가능하며 6톤 이상의 폭장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미 해군은 여기에 정찰과 전투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강력한 레이더 운용과 이를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레이더 장교가 탑승하길 주문했다.

맥도넬사는 어렵게 성사시킨 계약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이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진해 요구조건을 충족시켰다. 동시에 이 전투기를 어떠한 기후에서도 운용이 가능하고 공대공 전투와 폭격 임무 수행이 가능한 전천후 전폭기로의 개발을 추진했다.

미군은 이 기체의 개발이 완료되면 카메라를 장착한 정찰용 기체 또는 다량의 미사일을 탑재한 플랫폼으로도 사용하고자 했다. 맥도넬사는 어려운 개발과정을 거쳐 이러한 요구 사항을 모두 충족시킨다.

미군은 1955년 추가로 실험기 2기와 테스트 기체 5기를 주문하게 된다. 실험기는 'XF4H-1'으로 테스트 기체는 'YF4H-1'으로 불렸다. 테스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테스트기 YF4H-1은 1958년 5월 27일 초도 비행에 성공에 이어 항공모함 운용 테스트도 통과했다. 이후 F4H 팬텀 II라는 제식명칭이 붙었다. 뒤에 II가 붙는 이유는 이전 맥도넬사에서 만든 FH 팬텀이라는 기체의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F4 팬텀 II는 항공모함 탑재 함재기로써 무장 폭장량이 8.5톤에 이른다. 이것은 일본에 핵을 투하한 폭격기 B-29의 최대 폭장량 9.1톤과 비교해 얼마나 엄청난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다. F-4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중폭격기인 B-24 리버레이터보다 더 많은 유효 폭장탑재량을 자랑했으며 이것은 기체의 크기와 강력한 엔진의 힘이 짐작케 해 준다. 자료=내셔널 인터레스트(national interest)
F4 팬텀 II는 항공모함 탑재 함재기로써 무장 폭장량이 8.5톤에 이른다. 이것은 일본에 핵을 투하한 폭격기 B-29의 최대 폭장량 9.1톤과 비교해 얼마나 엄청난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다. F-4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중폭격기인 B-24 리버레이터보다 더 많은 유효 폭장탑재량을 자랑했으며 이것은 기체의 크기와 강력한 엔진의 힘이 짐작케 해 준다. 자료=내셔널 인터레스트(national interest)
F-4는 항공모함에서 이·착함을 해야 하는 제약이 있던 까다로운 해군 조종사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이러한 우수한 성능은 미 해군과 심리적 경쟁으로 라이벌 의식이 있던 미 공군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당시 미 공군도 F-100과 같은 여러 종의 전투기를 개발해 전선에 투입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강력하고 뛰어난 전투기가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미 해군이 쓰는 전투기를 미 공군이 그대로 쓴다는 것은 자존심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F-4의 스펙은 당시로선 정말로 뛰어나 당시 구소련의 도전이 강력해지면서 미 공군은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결국 F4 팬텀 II의 공군 도입을 추진한다.

미 공군은 F4 팬텀 II의 공중 급유구의 위치를 다르게 하고 F-110 스펙터(Spectre)라고 명명했다가 항공기 제식명칭 통합을 추진하던 당시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에 의해 1962년 해군과 같이 F-4 팬텀 II로 재변경하게 된다. 이렇게 공군은 F-4C, 해군은 F-4B로 명명된다.

당초 해군 함재기를 공군이 자존심을 굽히고 도입했다는 것은 그만큼 F-4의 스펙이 뛰어났다는 것, 당대 세계 최고의 전투기 탄생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추후 개량된 F-4E는 근접 교전을 위한 20mm 개틀링건이 장착되었으나 초기형엔 오로지 미사일만 장착돼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기관포 발사 시 발생하는 반동이 레이더에 악영향을 끼쳤고 근접 교전을 피하고 장착된 미사일로 가시거리 밖에서 적기를 선제 타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에서의 교전 수칙은 오히려 가시거리 내에서 적기를 확인하고 미사일을 사용하라는 보수적인 지시로 인해 조종사의 눈으로 피아 기체를 식별한 후 미사일을 소극적으로 사용했고(물론, 당시 장착한 레이더 성능과 미사일의 사거리·정밀도는 현재 첨단화된 성능과의 차이는 존재했다) 이러한 대응은 구소련의 미그(Mig)-21기의 침투를 허용해 고전을 겪는다.

베트남전에서는 F-4 대 미그-21은 1:3이라는 교환비를 기록했지만 미 공군은 소련제 전투기에게 이 정도의 교전 비율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치욕으로 여겼다.


다음 회에는 'F4 팬텀 II'의 좀 더 자세한 역사적 기록과 아시아에서 한국 공군이 최초로 도입하는 과정에서 남긴 비사, 아직도 19여대가 운영되는 F-4E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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