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이미래·정금형·김윤철…지금 베니스엔 'K아트' 일렁인다 [Weekend 문화]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22 04:00

수정 2022.04.22 07:55

3년만에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 받은 두 한국 작가
이미래 '엔드리스 하우스'
최고작가상 거론 될 만큼 존재감
정금형 '토이 프로토타입'
인간과 기계의 교감 모티브 보여줘
초청작가 213명 '역대 최다'
여성·공예·환경·비주류 화두로
【베니스(이탈리아)=박지현 기자】 코로나가 점차 물러가고 엔데믹을 마주한 4월, 이탈리아 베니스에는 전세계 미술인들이 오랜 시간 고대했던 '미술 올림픽'이 다시 열린다. 12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 최대 규모의 미술축제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가 23일 공식 개막을 앞두고 있다. 1895년 처음 개최돼 매년 미술전과 건축전을 번갈아 개최해왔던 베니스비엔날레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의 전세계적 확산으로 건축전이 1년 순연되면서 덩달아 미술전도 연기, 3년만에 개막하게 됐다. 공식 개막에 앞서 지난 20일(현지시간) 베니스 동쪽 카스텔로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 전시장에는 미술계 관계자 및 전세계 언론을 대상으로 프리뷰가 시작됐다. 최근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K컬처의 바람이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불어올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예술총감독이 여는 본전시와 각 나라에서 파견한 기획자와 작가들이 각각 따로 여는 국가관 전시로 나뉜다.
본전시가 그해의 주제를 제시한 총감독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행사의 주제와 성격을 대표한다면 국가관 전시는 사전에 제시된 주제를 각국이 어떻게 해석해냈는지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다. 올해 비엔날레 총감독은 미국 뉴욕 하이라인파크의 예술총괄 큐레이터인 세실리아 알레마니로 역대 최초 이탈리아 출신의 여성기획자다. 그가 제시한 주제는 '꿈의 우유'로 이는 상상의 세계에 사는 동물 이미지를 그린 초현실주의 여성화가 리어노라 캐링턴이 자신의 아이를 위해 쓴 그림책의 제목에서 따왔다. 알레마니 감독은 이를 '신체의 변형'과 '개인과 기술의 관계', '신체와 지구의 연결'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특히 올해 본전시는 그간 100명 미만의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됐던 관행에서 벗어나 213명이라는 사상 최다 작가들이 초청됐다. 이 가운데 84.5%에 달하는 180명의 작가가 베니스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했고, 여성 작가는 192명이 참가해 90%를 넘는다. 이러한 특징에 걸맞게 본전시의 작품 1433점은 '여성', '공예', '환경', '비주류의 주류화'라는 네 가지 특성이 두드러졌다. 한편 이번 본전시에는 정금형(42)과 이미래(34), 두 한국 작가의 작품이 초대돼 아르세날레 전시장 내 다섯번째 주제전 '사이보그의 유혹'전에 설치됐다.

본전시에 초청된 이미래 작가의 '엔드리스 하우스'. 사진=박지현 기자
본전시에 초청된 이미래 작가의 '엔드리스 하우스'. 사진=박지현 기자


저 이미래의 설치 작품 '엔드리스 하우스(Endless House : Holds and Drips)'를 만나볼 수 있다. 마치 살아있는 동물의 내장을 방금 꺼내 비계 또는 금속 배수판에 얹어놓은 것 같은 그의 작품은 마지막 몸부림을 치듯 점액질을 쏟아내고 다시 빨아들이는 작업을 반복하는데 역겨운 느낌이 들면서도 강렬하다. 이미래의 이번 작품은 해외 유력 미술전문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본전시 베스트 10에 선정되기도 해 공식 개막일인 23일에 예정된 시상식에서 최고작가상 혹은 은사자상 수상 후보권에 들어와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 다음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한 가운데 정금형의 '토이 프로토타입(Toy Prototype)'이 놓여 있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에 대한 관심을 담은 작품으로 해체된 마네킹과 전동 바퀴 기구가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본 전시장에서 벗어나 국가관이 몰려있는 자르디니 공원으로 향하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관에서 진행중인 김윤철 작가의 전시 '나선'을 만날 수 있다. 미술뿐 아니라 전자음악 작곡가로도 활동하며 국내 과학의 최고 연구기관 중 하나인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의 연구책임자로도 활동한 바 있는 김윤철 작가는 이번 전시의 모티프를 윌리엄 예이츠의 시 '재림'의 첫 구절에서 찾아냈다.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23일 이탈리아 베니스 현지에서 공식 개막한다. 한국관 대표작가로 선정된 김윤철 작가의 설치작품 '채도V''. 사진=박지현 기자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23일 이탈리아 베니스 현지에서 공식 개막한다. 한국관 대표작가로 선정된 김윤철 작가의 설치작품 '채도V''. 사진=박지현 기자

김 작가는 "나선은 일종의 회오리와 같은 것으로 쉬지 않고 원운동을 하며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하는데 팬데믹 등 작금의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우주의 움직임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지붕을 뜯어내고 하얀 콘크리트 벽을 걷어낸 후 유리벽으로 둘러싼 한국관 건물의 정중앙에 거대한 금속 매듭 또는 뱀이 또아리를 튼 형상의 작품이 이번 전시의 대표 작품인 '채도 V'다. 비늘같은 382개의 몰드 안에는 특수 실리콘 물질이 가득 채워져 있는데 무작위적인 기계 신호에 따라 위 아래로 구부러지며 기온과 명암에 따라 다채로운 색의 프리즘을 드러낸다. 사실 이 작품의 움직임은 옆방에 놓인 작품 '백 개의 눈을 가진 거인-부풀은 태양들'에 의해 컨트롤되고 있는데 '백 개의 눈을 가진 거인'은 우주를 구성하는 소립자 '뮤온'을 검출하는 스틱 246개로 구성돼 있다.
이 거대한 검출기는 대기 중에 떠 있는 뮤온 입자를 인지할 때마다 빛과 소리를 내고 이러한 신호는 알고리즘 계산을 거쳐 '채도 V'의 움직임을 관장한다. 이밖에 이번 전시에는 광물 용액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태양들의 먼지' 등 총 7점의 설치 작품이 공개됐다.


전시를 앞두고 예술감독 선정 논란·작가와 갈등 등 우려가 가득했지만 세계적인 미술 매체 '아트뉴스페이퍼'가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꼭 봐야할 국가관 전시 7개 중 하나로 선정하는 등 현지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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