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의 투심이 전기차에서 반도체로 넘어가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달말부터 반도체 관련 종목들의 순매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어서다.
■글로벌 반도체株, 순매수 상위권에
11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해외주식 순매수 1위를 기록한 종목은 '디렉션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 셰여즈 상장지수펀드(ETF)'다.
서학개미들은 이달에 7억5380만달러어치를 매수하고 5억1924만달러어치를 사들여 2억3456만달러를 순매수로 집계됐다. 거래대금이 20억 달러가 넘는 다른 선두권 종목에 비해 거래량 자체가 많지 않지만 매수 강도에 따라 순매수 1위에 올랐다. 서학개미의 스테디셀러 테슬라는 순매수 2위로 밀려났다.
디렉션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 셰여즈는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를 3배 추종하는 ETF다. 꾸준히 순매수 상위권에 랭크돼 있었지만 지난 달 하순부터 1위로 치고 올라왔다.
반도체 업종에 대한 관심은 개별 종목에서도 나타난다. 미국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는 이달에도 순매수 5위권에 자리를 잡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 큰 관심이 받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서학개미의 관심을 받게 된 종목은 ASML과 AMD다.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인 ASML은 상반기까지 순매수 39위에 머물렀지만 지난달 10위권에 들어왔고, 이달에는 순매수 상위 8위까지 치고 올랐다. 올해 상반기 순매수 금액이 5057만달러였는데 이달 들어 6거래일 동안 순매수 규모가 740만달러에 달했다. AMD 또한 올해 상반기까지 순매수 상위 18위에 머물렀지만 이달 들어 9위로 올라섰다.
이달 들어 반도체주가 반등세를 보이면서 약세장에 고생하던 서학개미도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디렉션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 셰여즈는 이달 1일(이하 현지시간) 11.60달러까지 떨어졌지만 8일 13.91달러로 반등했다. AMD도 같은 기간 73.67달러에서 79.35달러로 올라섰다. ASML도 이달 6일 428.88달러에서 이달 8일 452.95달러로, 브로드컴도 이달 5일 476.30달러에서 498.69달러로 반등에 성공했다.
■"삼성전자 실적, 주가 반등 이끌어"
반도체주의 반등은 삼성전자가 상반기에 보여준 메모리 반도체 실적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월가 전문가인 조던 클레인은 "삼성전자의 실적이 우려보다 덜 나빴다”면서 “2·4분기 실적 시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업종이 단기적인 상승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석훈 키움증권 글로벌리서치팀장도 "삼성전자가 컨센서스(시장 전망치)에 비해 좋지는 않았지만 전년 대비 성장세를 보여주면서 '최악은 아니다'라는 시그널을 미국증시에 준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투자사들도 글로벌 반도체주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ASML이 오늘날과 같은 불확실한 증시 상황 속 방어주로 기능할 것"이라며 "ASML이 현재의 성장세를 이어가 향후 2025~2030년 실적 가이던스를 상향 조정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독일 투자은행인 도이체방크도 "현재의 변동성 장세에서 브로드컴이 ‘안전한 항구(safe port)’로 기능을 한다"며 "브로드컴의 인프라 집약적이고 소비자 지향적인 소프트웨어는 장기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변동성 장세 속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분석했다.
다만, 국내 전문가들은 실적 시즌을 앞두고 매수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연초부터 반도체의 업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계속 이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석훈 팀장은 "이번주 후반부터 어닝 시즌(실적 시즌)이 오기 때문에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이 커진다"라며 "당장의 기대감에 매수를 하기보다는 7월에는 실적 발표와 이후의 가이던스를 최대한 기다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