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좌회전 없는 길에서 '좌회전시 유턴' 표지판 보고 사고…대법 "지자체 책임 없어"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14 09:38

수정 2022.08.14 09:38

지난 2013년 6월12일 오후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 입구에 유턴표시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있다. 2013. 06. 12. jhseo@newsis.com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지난 2013년 6월12일 오후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 입구에 유턴표시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있다. 2013. 06. 12. jhseo@newsis.com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좌회전을 할 수 없는 길에서 '좌회전시 유턴'을 지시하는 도로 표지판이 설치됐다 하더라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운전자가 혼동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이라면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A씨 등 3명이 제주특별자치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친구들과 2017년 3월 제주도 여행을 왔다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쳤다. 사고가 난 곳은 'ㅏ' 형태의 상거리로, A씨는 유턴을 하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신호등 옆에 붙어 있던 유턴 지시 표지에는 '좌회전시, 보행신호시/소형 승용, 이륜에 한함'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 길은 좌회전을 할 수 없는 길로, 신호등에도 좌회전 신호가 없는 등 잘못된 도로표지판이었다.

A씨는 이런 상황에서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불법 유턴을 해 반대편 도로에 진입했고, 맞은편 도로에서 직진·좌회전 신호로 시속 71㎞로 운전하던 자동차가 A씨 오토바이 뒷부분을 추돌해 크게 다쳤다.

A씨 가족들은 "실제 도로 상황과 맞지 않는 신호표지로 착오를 일으켜 사고가 났다"며 시설 설치·관리 주체인 지자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사고 지점의 도로 표지판은 영조물(행정주체에 의해 공적인 목적으로 공여된 물건·설비) 하자에 해당하지 않고, 하자라 보더라도 A씨가 당한 사고와는 인과관계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반면, 2심은 1심 판단을 뒤집고 2억 5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했다. 2심은 "실제 도로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신호표지로 인해 운전자가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고 이는 영조물 설치 관리상 하자"라며 "사고와의 인과관계도 인정된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보조표지 내용에 일부 흠이 있더라도 일반적·평균적 운전자 입장에서 상식적이고 질서 있는 이용방법을 기대할 수 있다면 표지의 설치나 관리에 하자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파기환송했다.

사고가 난 곳의 보조 표지에는 '좌회전시, 보행신호시'라고 적시돼 있는데, 이는 신호등이 좌회전 또는 보행자 신호등이 녹색일 때 유턴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당시 교차로는 좌회전할 도로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신호등에 좌회전 신호도 없었기 때문에 보행자 신호등이 녹색일 때 유턴할 수 있을 뿐이다.

즉, 통상 이러한 상황에서 보행자 신호가 녹색일 때 유턴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빨간색일 때도 유턴할 수 있다고 혼동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 사고 이전에 표지가 잘못 설치됐다는 민원이나 사고가 발생한 적이 없다는 점도 감안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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