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수해복구도 안됐는데..지긋지긋" 반지하 위에 모래주머니 쌓는 신림동 주민들[현장르포]

노유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9.06 05:00

수정 2022.09.06 05:00

'강남 폭우' 한달만에 태풍 맞는 관악·동작구
일가족 숨진 신림동 주택 앞 싱크홀 또 생겨
동작구선 "물·전기 또 끊길까 오늘밤도 걱정"
초강력 태풍 '힌남노' 영향권에 들면서 비가 내린 5일 오전 11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발달장애인 가족이 사망한 반지하 주택 앞 도로에 또 다시 싱크홀이 생겼다. 사고 당시에도 싱크홀로 인해 소방차 진입이 늦어졌다. 사진=노유정 기자
초강력 태풍 '힌남노' 영향권에 들면서 비가 내린 5일 오전 11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발달장애인 가족이 사망한 반지하 주택 앞 도로에 또 다시 싱크홀이 생겼다. 사고 당시에도 싱크홀로 인해 소방차 진입이 늦어졌다. 사진=노유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지난달 8일 서울지역 폭우때 반지하 주택에서 사망사고가 났는데 이번에 또 다시 폭우가 내려 불안한 마음에 집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 집중호우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박모(76)씨는 5일 연신 불안한 표정으로 집 밖에 나와 있었다.
박 씨의 단독주택은 반 지하에 세입자 두 가구가 세들어 살고 있다. 지난번 폭우때 관악구 반지하 주택에서 일어난 사망사고가 생각나 쏟아지는 빗줄기속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혹시 빗물이 반 지하 가구로 들어차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6일 오전 경남권 상륙이 예상되는 초강력 태풍 '힌남노'는 이날부터 6일까지 전국에 100~300㎜이상 비를 뿌릴 것으로 보인다. 지금 누구보다 마음을 졸이고 있는 사람들은 지난 번 폭우때 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이다. 아직 피해복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예고된 폭우에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달 8일 집중호우로 인해 침수피해가 발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이 5일 낮 12시 현재까지 피해복구가 완료되지 않은 모습. 사진=노유정 기자
지난 달 8일 집중호우로 인해 침수피해가 발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이 5일 낮 12시 현재까지 피해복구가 완료되지 않은 모습. 사진=노유정 기자
"아직 복구중인데..또 물폭탄"

이날 기자가 찾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에는 지난 달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길가에는 침수돼 쓸 수 없게 된 물건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고, 침수로 고립돼 일가족이 사망한 반지하 주택 앞 도로는 쏟아지는 빗줄기 탓인 지 다시 움푹 패인 모습이다.

사고 당시 싱크홀 때문에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해 급하게 모래와 자갈로 메웠으나 이날 비가 다시 내리면서 도로에 3~4㎝ 깊이의 구멍이 패인 것이다.

지난 1998년부터 신림동 반지하주택에 살았다는 강윤수(83)씨는 "도림천이 범람해 침수 피해를 겪는 게 벌써 세번째"라며 "지난번에는 무릎까지 물이 찼는데 이번엔 물이 가슴께까지 찼다. 이런 피해는 처음"이라고 지난달 폭우 당시 놀랬던 가슴을 다시한 번 쓸어내렸다.

한달이 다 되어가지만 강씨는 아직 정상적인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한 채 수마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폭우로 인해 쓸모 없게 된 컴퓨터, 복사기, 냉장고, 장롱, 가스레인지 등 가구와 가전제품 모두 내다 버렸다. 세간살이가 얼마 남지 않은 집에서 강씨는 벽지 대신 임시로 시트지를 붙이고 있었다.

반지하에 세입자 두 가구를 둔 단독주택 집주인 박모씨(76)는 불안한 마음에 수시로 세입가구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박 씨는 "저번에도 펌프 신청한 사람이 많아 빨리 배정받지 못하니 물은 계속 차고 피해가 컸다. 이번에는 펌프가 충분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5일 낮 12시께 기자가 찾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반지하 주택에서 강윤수(83)씨가 벽에 시트지를 새로 붙이고 있다. 태풍 때문에 날씨가 습한데 새로 도배해도 괜찮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강씨는 "우선 사람이 살아야 할 것 아니냐"고 답했다. 사진=노유정 기자
5일 낮 12시께 기자가 찾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반지하 주택에서 강윤수(83)씨가 벽에 시트지를 새로 붙이고 있다. 태풍 때문에 날씨가 습한데 새로 도배해도 괜찮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강씨는 "우선 사람이 살아야 할 것 아니냐"고 답했다. 사진=노유정 기자
소규모 공장피해액만 3억원대..복구 막막

인근 반지하에서 소규모 스웨터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윤성옥(72)씨도 불안한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윤 씨는 이날 일찍부터 나와 공장 앞쪽에 모래주머니를 잔뜩 쌓고 있었다. 지난 달 폭우때 가슴까지 차오른 물 때문에 스웨터 재고를 모두 내버렸다. 특전사 군인들과 봉사자 등 40명이 복구작업을 도왔지만 피해 금액만 3억4000만원대에 달해 그저 막막할 뿐이다.

윤씨는 "장판도 새로 깔았는데 계속 벽 쪽에서 물이 새어나오고 있다. 지금도 펌프 두 대를 놓고 혹시 물이 찰까 봐 대비하고 있다"며 "침수 이후 지금까지 운영을 멈췄는데 납품 기일이 밀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재난지원금도 신청했는데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장에서 만난 관악구청 관계자는 "관악구의회가 이날 추경예산안 의결을 마치면 바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방침"이라며 "추석 전까지 지급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관악구측은 초강력 태풍 '힌남노' 피해를 예방코자 관내 취약시설을 긴급 점검하는 한편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양수기를 미리 정비해 물난리시 빨리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8일 서울지역에 내린 폭우로 옹벽이 무너지는 피해가 발생한 서울 동작구 극동아파트의 피해 복구 공사현장에 파란색 방수포가 덮여있다. 사진=주원규 기자
지난달 8일 서울지역에 내린 폭우로 옹벽이 무너지는 피해가 발생한 서울 동작구 극동아파트의 피해 복구 공사현장에 파란색 방수포가 덮여있다. 사진=주원규 기자

동작주민들도 태풍 소식에 '몸서리'

동작구도 지난달 폭우에 막대한 침수 피해가 발생한 지역이다. 특히 산사태로 옹벽이 무너진 동작구 극동아파트 주민 200여세대 554명이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이후 옹벽 복구를 위한 공사가 진행중이지만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는데 초강력 태풍 '힌남노'까지 상륙하면서 주민들은 추가 피해가 발생할까봐 전전긍긍해하고 있다.

무너진 옹벽과 흘러내린 토사는 임시로 덮은 파란색 방수포에 고정돼 있었다.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옹벽과 아파트 사이에 지지대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형 포댓자루도 설치돼 있었다.

이처럼 아직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초강력 태풍까지 예고되자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산사태 이후 잠시 아파트를 떠났던 주민들은 지난달 27일부터 겨우 다시 집으로 돌아온 상태다.

주민 안모(84)씨는 "태풍이 또 온다고 해서 매우 걱정"이라며 "바깥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대비를 한 상태라 집에 머물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주민 이모(85)씨는 지팡이를 짚은 채 아파트 상가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달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집에 갇힌 경험도 있어 이번 태풍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생겼다.

이씨는 "물과 전기가 끊기고 엘리베이터도 작동하지 않아 오갈 수 없었다"며 "빗물을 받아 화장실 물을 내리고, 집에 있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했다. 이어 "태풍으로 밤에 비가 많이 온다는데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주부 최모씨는 "비라면 지긋지긋하다"며 "토사가 자꾸 흘러내려 아파트 출입구에 흙이 쌓일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주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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