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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엔저현상..24년만에 140엔 돌파 이유는?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9.11 14:20

수정 2022.09.11 14:20

[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엔화 가치가 하락을 거듭하고 있는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전날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도쿄외환시장에서 장중 1달러 당 135.16엔까지 하락하는 등 지난 1998년 10월 이후 약 24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2022.06.14. livertrent@newsis.com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엔화 가치가 하락을 거듭하고 있는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전날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도쿄외환시장에서 장중 1달러 당 135.16엔까지 하락하는 등 지난 1998년 10월 이후 약 24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2022.06.14. livertrent@newsis.com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엔 가치가 2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가운데 일본 정부가 필요할 경우 조치를 취하겠다고 11일 밝혔다.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세이지 키하라 일본 부총리는 이날 "엔 가치가 2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다"며 "관련 현상을 면밀히 관찰해 필요에 따라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엔 가치 하락 속도는 1989년(123.30엔→151.80엔) 이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올해 1월 113.40에서 지난 7일 144엔을 돌파하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27엔 이상 떨어졌다.

엔 가치가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하자 지난 7일 오전 마츠노 내각관방 장관이 "다소 일방적이고 급속한 엔 약세가 지속될 경우 필요한 대응을 하겠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개입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으로 인해 오히려 엔 가치는 추가 하락했다.

이에 지난 8일 일본 재무성과 금융청, 일본은행(BOJ)이 3자 긴급회동을, 9일에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총리 관저에서 회담을 갖는 등 정부와 BOJ가 분주하고 움직이고 있다.

■엔저 현상 가속화 이유는?
시장에서는 일본과 미국의 금융정책 차이를 투자자들이 인식하면서 엔저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고 있다.

반면 미국만큼 인플레이션이 심각하지 않은 일본에서는 코로나19로 타격 입은 국내 경기를 회복시키는 것을 우선과제로 삼고 저금리를 고수하고 있다.

돈은 금리, 즉 이자가 낮은 곳보다는 높은 곳을 찾아가는 습성이 있다. 미국에 비해 일본의 기준금리가 낮은 상황이기 때문에 금리가 낮은 엔을 팔고 금리가 높은 달러를 사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달러가치가 상승하고 엔 가치가 하락하는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엔저 현상의 주된 이유다.

■엔저 저지 방법은? 환율개입 vs 금리인상
과거에 엔저 현상은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높여 수출 주도의 일본 경제에 호재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악재로 여겨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유 및 석유제품을 비롯해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엔 가치가 급락하면서 물품을 수입할 때 전보다 더 비싼 가격을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입물가가 급등하면 가계와 기업들의 부담은 커지게 된다.

엔저를 멈추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외환시장 개입이다. 일본 재무성의 간다 마사토 재무관은 지난 8일 "모든 조치를 배제하지 않고 외환시장에 필요한 대책을 취할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간다 재무관이 언급한 '모든 조치'에 정부가 엔을 매입하고 달러를 매도하는 '환율 개입'도 포함됐다고 해석했다.

그동안 일본 재무성은 376차례 환율 개입에 나섰다. 이 중 엔고에 대응하기 위한 엔 매도·달러 매입은 319회, 엔저에 대응하기 위한 엔 매입·달러 매도는 32회다.

또다른 방법은 BOJ의 기준금리 인상이다. 엔저 현상의 주된 이유가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차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미국과의 금리차를 좁히기 위해 BOJ가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도 선택 가능한 옵션 중 하나다.

■선택 옵션 마땅치 않아..엔저 당분간 지속
그러나 시장에서는 일본 측에서 외환시장 개입과 기준금리 인상 둘 중 어느 것도 취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외환시장 개입의 경우 주요 7개국(G7) 등 선진국들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데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강달러가 유지되길 바라는 미국 측에게 지지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 미국의 지지 없이 일본이 외환시장에 개입한 사례도 존재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4~6월 BOJ가 3조470억엔어치 달러를 매도해 환율 방어에 나선 바 있다.

기준금리 인상 역시 쉽지 않은 옵션이라고 시장에서는 판단하고 있다. '환율 통제를 목적으로 한 통화정책 변경은 적절하지 않다'게 BOJ 내 대다수 입장이기 때문이다. 외환정책은 재무성 소관이고 통화정책은 환율안정이 아닌 물가안정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도 최근 환율 안정을 위해 금리인상을 단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 7월 금융정책결정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소폭의 금리 인상으로 엔 하락을 막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면서 "금리 조정을 통해서만 엔 약세를 막기를 원한다면 엄청난 폭의 금리 인상이 필요할 것이며 이는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당분간 엔저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김채윤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25엔대를 상회한 후 장기 엔 약세 트렌드에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당분간 엔 가치가 달러당 140엔 안팎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했다.

향후 달러당 147엔대까지 하방 압력 가능성도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속화되면서 엔 가치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1998년의 147엔대를 넘어 148엔까지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채윤 연구원은 "BOJ의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이 유지되는 한 11월 미국의 중간선거 이후 미국 인플레이션의 뚜렷한 둔화세가 관측될 경우에도 엔화 약세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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