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반도체 등 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 심각.."기술자 처우개선이 먼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01 05:00

수정 2022.10.01 05:00

5년새 83건 유출.. 40%가 국가핵심기술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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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 "산업기술의 해외유출을 예방하고 싶다면, 산업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모 대기업 임원 출신인 기술사 김모(65)씨는 최근 핵심 국내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 방지를 위한 대안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 일본에서 선진적인 공조냉동기술 등을 배워와 국내에 도입했고, 한국에너지공단의 에너지전략평가위원 등을 역임해 온 기술 고급인력이다. 그는 한국도 80년대까지 반도체와 자동차, 에너지 등 산업의 핵심기술을 손에 얻기 위해 선진국에 의존했다고 회상한다. 퇴직한 일본인 기술자들을 영입하고, 산업스파이 파견 방식으로 신흥공업국으로서 도약했다는 주장이다.

김씨는 "기술인력의 포섭을 매개로 한 산업기술의 유출은 지금까지도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며 "산업기술의 핵심은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노동력에 있다"고 강조한다.


최근 대내외적으로 반도체나 배터리 등 핵심 산업기술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글로벌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기술 하나에 기업이 살고 죽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사람이 개발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기술자 처우가 그 노동력과 기술 개발 능력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 해외 기업들로부터 늘 기술 유출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편이다.

신흥공업국가로서 당당히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은 산업기술을 빼오던 과거와 달리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산업기술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5년간 핵심 국내 산업기술의 해외유출 사건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관련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 국가핵심기술 등을 해외로 빼돌리는 이른바 '산업스파이'도 연평균 약 400명씩 사법당국에 의해 검거되고 있다. 그만큼 국내 유망 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려는 시도가 많다는 증거다. 국내 핵심 산업기술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기술인력의 유출을 막기 위한 사회적 비용의 대대적인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산업기술 해외유출 최근 5년새 83건 발생

국내 산업기술 해외유출 추이 /그래픽=정기현 기자
국내 산업기술 해외유출 추이 /그래픽=정기현 기자

3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년~2022년 7월) 발생한 핵심 국내 산업기술 해외유출 건수는 총 83건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8년 20건, 2019년 14건, 2020년 17건, 2021년 22건, 2022년 7월까지 10건 순으로 발생하고 있다. 매년 20건 안팎으로 꾸준히 발생하는 셈이다.

산업기술의 해외유출 사례를 제조업 별로 살펴보면 대한민국이 글로벌 톱인 반도체 제조분야에서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나 유출 방지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어 디스플레이 분야와 조선 분야, 자동차 제조 분야가 순으로 해외로 기술이 빼돌려지는 실정이다.

이들 업종 모두 기술력 차원에서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 우위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산업기술 해외유출 건수 중 절반 가까이인 40%(33건)가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핵심기술의 해외유출 건수는 2018년 5건, 2019년 5건, 2020년 9건, 2021년 10건, 2022년 7월까지 4건 순으로 조사됐다.

'국가핵심기술'이란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산업기술을 의미한다. '산업기술의유출방지및보호에관한법률'에 따라 지정·관리돼오고 있다. 주목할 점은 국가핵심기술의 해외유출이 2020년 이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데 있다. 산업기술을 둘러싼 국제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에 따라 산업스파이들의 활동 역시 왕성한 실정이다.

이날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 통계를 인용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스파이는 최근 5년간(지난 2018~2020년 8월) 1501명이 검거됐다. 연평균 약 400명의 산업스파이들이 검거되고 있다는 얘기다.

산업기술 구현할 기술 인력에 대한 투자 중요

산업스파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일단 부정적이다. 일각에선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산업스파이가 산업기술의 해외유출의 근본적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들이 한국과 외국 사이의 정보교류 창구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기 때문에 기술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김씨는 "어떠한 선진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경우, 모범사례를 모방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라며 "이 과정에서 산업스파이는 상대방에게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이들은 자신들의 정보를 일부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업기술의 교류를 내셔널리즘에 기반해 조명하는 것은 자칫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만약 굴지의 반도체 회사에 다니는 기술자가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했는데, 한 중국계 기업이 고액의 연봉을 제시한다면 (중국계 기업에) 취업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어떠한 첨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유지·운영하기 위한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며 "산업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숙련된 노동력이 사라지는 것을 더욱 걱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못지않게 기술자들의 노동력을 존중하고 그에 합당한 처우개선을 해줄 때 해외 기술 유출 우려가 어느정도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