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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인상 선봉장 나선 기시다… 日 ‘침체의 늪’ 벗어날까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2.05 18:35

수정 2023.02.05 18:35

日 소비자물가 1월 4.3% 상승
41년 8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
올 가계부담 4만엔 늘어날 전망
기시다 "임금 5% 이상 올려야"
대기업들 인상 동참나서
유니클로, 연봉 최대 40% 인상
이온그룹, 파트타임 시급 7%↑
미쓰비시 자동차 등 기업 15%
10만엔 이상 인플레 특별지원금
임금인상 선봉장 나선 기시다… 日 ‘침체의 늪’ 벗어날까
기시다 총리
기시다 총리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최근 일본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막론하고 국가적인 임금 인상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필두로 그동안 임금 인상에 인색하던 대기업들도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서슴없이 밝히고 있다. 일본은 이같은 임금 인상이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역대급 물가 상승에 따른 국민 고통을 덜어내고 경제 활성화로 가는 해법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금 안 올리면 망한다'

5일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일본의 기업인 단체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은 지난달 17일 올해 춘계 노사협상(춘투)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급격한 물가 상승에 대응해 기본급을 포함한 임금 인상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게이단렌이 기업 측 협상 방침을 보여주는 경영노동정책특별위원회 보고에는 기본급 인상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명기됐다. 또 기업들이 임금 인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라고 언급됐다.
현재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상승, 엔저(엔화가치 상승) 영향으로 일상생활과 기업 수익에 악영향이 우려되기 때문에 물가 동향을 특히 중시한다는 표현도 나왔다. 경노위 보고에서 과거 소비세 증세 때 외에 물가 동향이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면서 게이단렌은 임금 인상 방향과 관련해 기본급 인상을 검토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기업 측(사용자) 입장을 대변하는 게이단렌이 임금 인상 주장에 힘을 싣는 것은 이례적이다.

■기시다 "5% 이상 올려야"

일본 임금 인상의 깃발을 들고 가장 선두에 뛰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기시다 총리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근로자 임금 상승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로 꼽으면서 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임금 인상을 기업에 압박, 주문했다. 그는 이어 재계 단체 게이단렌과 최대 노총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의 신년회에 모두 참석해 임금 인상을 재차 강조했다.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대규모 금융완화(돈풀기) 통화정책을 펴고 있는 일본은행(BOJ)이 정책 수정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에도 임금 인상이 자리한다.

지난달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정책 유지를 결정하면서 "물가 전망은 상승 위험이 크지만 기업이 임금 인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한 시점까지 금융완화를 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엔저가 심각해지면서 소비자물가 상승이 가속화하고 있다.

전국 소비자물가의 선행 지표로 꼽히는 도쿄 23구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는 올해 1월 전년동기대비 4.3% 상승했다. 이는 1981년 5월 이후 41년 8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오른 것이다. 지난해 12월(4.0%), 11월(3.7%) 등을 연속 갱신하는 등 소비자물가는 엔저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1년째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같은 고물가의 영향으로 지난해 가계 부담은 가구당 전년보다 9만6000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는 추가로 4만엔이 증가할 전망이다.

■日기업, 인플레 특별수당 지급

물가 상승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기업들도 앞장서기 시작했다.

신용정보회사 데이코쿠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수당을 지급하고 있거나 지급을 검토하는 기업은 26.4%에 달했다. 평균 지급액은 일시금이 5만3700엔이었으며 10만엔 이상을 지급하는 기업도 15%를 넘었다.

특히 대기업들의 동참이 활발하다. 미쓰비시자동차는 급격한 물가 상승을 고려해 지난해 말 특별지원금으로 1인당 최대 10만엔을 지급했다.

식품회사인 겐민식품도 지난해 여름에 이어 지난해 말 가족 숫자에 비례해 생활지원 일시금을 지급했다. 시장조사 회사 오리콘은 월급에 1만엔을 더한 인플레이션 특별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은 3월부터 일본 국내 직원의 연봉을 최대 40% 파격 인상키로 했다. 도요타자동차 노조는 20년 만에 최대 폭(월 5860엔)의 임금인상을 요구하기로 했다.

비정규직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 대형 유통업체인 이온그룹은 약 40만명에 이르는 파트타임 근로자의 시급을 평균 7% 올리기로 했다. 이온에서 일하는 파트타임 근로자의 평균 시급은 대략 1000엔이어서 인상이 이뤄지면 1070엔 정도가 된다. 이온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파트타임 근로자를 고용한 업체다. 일본 비정규직 노동자의 2%가 일하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업계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온의 파트타임 근로자 시급 인상은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근로자는 수입의 일정액을 넘으면 세금과 사회보험료 부담이 생기는 '연간 수입의 벽'을 이유로 일하는 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중기 10곳 중 7곳 "여력 없다"

다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중소기업들도 임금 인상 여력이 없다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이를 구제하는 것이 관건이다.

현지 공영방송 NHK는 일본 수도권에서 점포 85곳을 운영하는 신용금고 회사가 거래 중인 중소기업 738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72.8%가 "임금을 올릴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은 임금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로 실적 부진, 원자재 가격 급등 등을 꼽았다. 임금을 인상하겠다고 한 중소기업 중에서도 35.4%는 상승률로 1%대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임금 상승률을 2%대로 전망한 기업은 27.8%였다. 기시다 총리의 5% 목표치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게이단렌은 "거래 조건 개선과 적정한 가격 전가가 불가피하다"며 대기업에 중소기업과 거래가격 협의에 응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k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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