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인간의 수명 늘려준 첨단기술… 인간다운 삶도 책임질 수 있을까 ['장수 박사' 박상철의 홀리 에이징]

조용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2.17 04:00

수정 2023.02.17 04:00

Weekend 헬스
(17)노인의 존엄성과 과학기술
고령자도 당당한 인생을 살려면
저하된 신체기능 보완해주는
디지털 혁신에 기댈수밖에 없어
하지만 문명이 발전한다 해서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아
그 방향에 대한 고민 서둘러야
인간의 수명 늘려준 첨단기술… 인간다운 삶도 책임질 수 있을까 ['장수 박사' 박상철의 홀리 에이징]
인간의 수명 늘려준 첨단기술… 인간다운 삶도 책임질 수 있을까 ['장수 박사' 박상철의 홀리 에이징]
장수인(長壽人)이라는 용어를 단순한 연령적, 시간적 개념에서 인식해야 할 것이 아니라,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새로운 계층의 출현이라는 개념으로 인식해야 할 시점이 됐다. 따라서 장수문화란 종래의 연령적 노인문화라는 개념이 아니고, 연령을 초월해 고령사회에서 사회구성원인 인간들이 남녀노소 모두 함께 고령자 중심으로 어우러져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건강하게 살며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관념 및 규범 체계로 새롭게 해석돼야 한다.

사회 구성원 누구나 함께 건강장수를 추구하며,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능동적 생활을 영위하기를 요구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고령자들이 당당하고 보람있는 삶을 살아가는 세상을 목표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이 들어 신체기능이 저하된 인간의 능력을 보완 증강해줄 수 있는 과학기술의 역할이 크게 기대될 수밖에 없다.

16세기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저술할 때만해도 과학기술이 사회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17세기를 들어서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도가 커지면서 프랜시스 베이컨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욕구가 충족되고 행복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19세기, 20세기로 접어들며 과학기술이 대량살상의 전쟁 도구가 되고 제국주의가 등장하며 인성이 파괴되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로 이끌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화됐다.

하지만 이후 등장한 공상과학(Science Fiction) 작품들은 로봇으로 대체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며 육백만불의 사나이, 배트맨, 수퍼맨, 어벤저스 등으로 발전하며 초인간적 능력을 가진 새로운 생명체로서의 인간상을 부각하고 있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어려운 업무를 사이보그들이 가진 초능력으로 해결해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고 재난을 막아주는 정의로운 존재로 등장하면서 인류에게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한 보랏빛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효율과 편리 추구를 주목적으로 하고 행복 추구는 그 목적에 없기 때문에 과학기술 발전이 인간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보다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필요가 대두되고 있다. 과학기술이 초래하는 인간관계의 질적 변화와 이에 따른 사회질서와 삶의 질의 변화가 일으키는 인간의 존엄성 문제가 심각하게 부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접해온 세상에서 인간은 성장하며 사회적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접촉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감성을 교환해 왔다. 직접적 접촉을 통해 감성이 증대됐고 서로간의 관계를 긴밀히 유지할 수 있었다. 부모자식, 부부, 동료, 이웃 사람 간에도 이러한 접촉으로 끈끈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보혁명 이후의 인간들은 직접적 접촉보다 각종 전자통신매체를 이용한 간접적 접촉으로 연결되고 있다.

문명의 이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게 되면 편리하게 보다 많은 사람들과의 양적 관계를 확대할 수 있는 반면, 서로간의 관계의 질적 강도는 축소될 수밖에 없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효율과 편리성을 강조해 생성된 보편 개념이 인간적 유대를 강조한 연대 개념과 트레이드오프 되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미치는 과학기술 발전의 영향에 대해 고심할 때가 됐다. 더욱 과학기술 혜택의 연령적 차별이 점점 심해져 가는 상황은 이러한 문제점을 더욱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다.

존엄성(尊嚴性)은 "감히 범할 수 없는 높고 엄숙한 성질" 혹은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는 부정하거나 범할 수 없는 고상한 성질"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임마누엘 칸트는 존엄성에 대하여 '윤리형이상학정초'에서 "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가격을 갖거나 아니면 존엄성을 갖는다. 가격을 갖는 것은 같은 가격을 갖는 다른 것과 교환되거나 대치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같은 가격을 갖기를 허용하지 않거나, 모든 가격을 뛰어 넘는 것은 존엄성을 갖는다"라고 정의하면서 인간 세상의 모든 것들은 둘 중 하나에 속한다고 했다.

존엄성이란 가격을 뛰어넘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이며 바로 인간의 본질임을 강조했다. 인종, 성별, 종교, 사상, 문화 그리고 연령의 차이와 무관하게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가치와 이념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인간의 최고 원리이다. 인간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인 존엄한 존재로 대하라는 도덕적인 명령과 요구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실천 명령이고 요구라는 칸트의 통찰력을 되새겨 보면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는 존엄성을 갖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본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만족할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세계 전 지역의 행복지수를 비교 조사해 보았을 때, 의외로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에 부유한 국가가 아니라 가난한 나라가 많다는 것이다. 바로 행복지수의 패러독스이자 행복의 패러독스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인간이 사회적 한계에 대해서 적절하게 수용하고 달관해버리면 제도적 경제적 문제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 부도 아니고 사회적 제도도 아니라면 결국 새로운 세상 미래세계에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어떤 것이 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다운 존재로서의 자긍심과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가치를 부여해줄 수 있는 방안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인간 수명이 증가하고 능력이 확대되어 감에 따라 문제는 더욱 커져 갈 수밖에 없다.
장수사회를 맞으며 나이든 사람들도 가치를 인정받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견지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방향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되었다.

박상철 전남대 의대 연구석좌교수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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