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美함정 인수, 레이더 없이 항해 군산·인천 봉쇄작전 등 공훈
6·25때 450t군함 끌고 태평양 건너와…한미동맹 70년 맞아 편찬
[파이낸셜뉴스]
6·25때 450t군함 끌고 태평양 건너와…한미동맹 70년 맞아 편찬
6·25전쟁 시기 미국에서 소형 군함을 인수해 태평양을 건너와 풍전등화의 조국을 구하는 데 힘을 보탠 해군 예비역 준장 박찬극 제독의 일대기가 평전으로 나오게 된다.
군관계자는 한미동맹 70주년이 되는 올해 미측과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6·25전쟁에서 맹활약하고 전후 한국 해군 전력 증강에 크게 기여한 박 제독의 일대기를 정리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박 제독은 1926년 9월 22일 평북 박천에서 태어나 1947년 홀로 월남한 뒤 그해 9월 해군사관학교 3기로 입학, 1950년 2월 소위로 임관했다.
1949년 10월 17일 미국으로부터 구매한 450t급 전투함정 금강산함(PC-702) 인수 항해장으로 군 생활을 시작한 박 제독은 1950년 6월 12일 미 본토에서 인수 요원들과 함께 금강산함을 인수받고 그해 6월 24일 하와이를 거쳐 오는 도중에 6·25전쟁 발발 소식을 전해 듣는다. 한 달 넘는 항해를 거쳐 같은해 7월 16일 진해로 입항했다.
금강산함은 정원 70여 명보다 훨씬 작은 숫자의 승조원 15명만 탄 채로 귀국 입항해 군산·인천 봉쇄 작전 등 서·남해 봉쇄에 투입돼 활약했다.
1950년 7월 22일 인천항 입구에서 북한이 월미도에 설치해둔 122㎜ 곡사포 10문을 파괴했고,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중에는 미 해군 상륙함이 조류에 떠밀려 와 금강산함과 충돌하면서 아찔한 순간을 겪기도 했다. 또 덕적도·영흥도 탈환 작전, 통영 상륙작전, 흥남철수작전, 피난민 수송 작전 등에 참가해 숱한 전공을 세웠다.
금강산함은 현재 서해 근해를 지키는 450t급 유도탄고속함(PKG)과 비슷한 크기로 당시 금강산함은 한국이 사들이기 전 민간으로 매도된 상태여서 관리가 부실해 인수 요원들이 필요한 부속을 직접 마련해야 했고, 레이더조차 없어서 함정 위치를 파악하려면 별을 보면서 나아가는 천측 항해가 필요했다고 전해진다.
한국 해군이 1963년 최초의 구축함 충무급 1번함을 도입한 뒤 1967년 2·3번함 도입을 추진할 때 미 의회의 반대에 부닥치자 1967년 3월부터 1967년 9월까지 무관으로 미국에 있던 박 제독이 버크 제독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미 예편했음에도 존경받는 해군 제독이던 버크 제독이 발 벗고 나서면서 미 의회가 입장을 바꿨고, 이후 한국 해군은 충무급 2·3번함을 무사히 도입할 수 있었다.
버크 제독은 미 해군참모총장을 3번 연임하면서 한국에 총 30척 넘는 함정을 제공, 한국 해군 전력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1991년 생존 인물로는 미 해군 역사상 최초로 이름이 함명으로 제정돼 이지스 구축함 1번함이 '알레이버크함'으로 불린다.
전쟁 중 충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박 제독은 1974년 제5해역사령관 재임 시절 어청도 근해에서 간첩선을 격침하는 등 활약을 이어가다가 정전 후 각종 함장과 해군대학 교관, 해군본부 병무과장 등을 역임 후 1976년 1월 31일 전역했다. 그는 이후에도 라스팔마스 총영사와 주볼리비아 특명전권대사를 지내며 외교 일선에서 조국에 헌신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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