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최진숙 칼럼] 걷지 말고 뛰어라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12 18:14

수정 2023.06.12 18:14

[최진숙 칼럼] 걷지 말고 뛰어라
"제 생각에 리더십에서 짜릿한 부분은 바로 이것인 것 같습니다.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있어도 이길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요. 어떻게 이길 수 있냐고요? 바로 그때가 회사의 본질이 드러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2010년 6월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뷰)" 이 말을 하고 있는 이는 세계 반도체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60)이다. 앞서 여러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황은 이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실패, 역경을 통한 전진'은 그의 삶의 모토다. 대만에서 태어나 9세 때 미국의 삼촌 집에 보내졌을 때부터 그랬다.
기숙학교에서 인종차별로 매일같이 변기 청소를 했다. 집중력은 탁월했으며, 컴퓨터 게임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럼이 많은 아이였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소름 끼친다고 느끼는 수준"이었다. 중요 행사마다 가죽재킷을 입고 나타나 반도체 칩을 손에 쥐고 흔들며 소리치는 지금의 모습에서 상상이 되는가. 집 근처 레스토랑 알바 생활이 큰 전환점이 됐다고 그는 기억한다. "세상이 막 붕괴할 것 같은 식당 러시아워를 겪으며 길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1993년 시작된 엔비디아 초기 역사도 실패의 연속이다. 역동적인 비디오게임 그래픽을 위한 강력한 컴퓨터 칩을 개발하는 것. 엔비디아의 목표였다. 이전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업이다. 하지만 칩 가격이 비쌌고, 독자기술을 고집하는 바람에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태동을 시작한 3D게임 시장이 그를 살렸다. 실패와 반전의 드라마는 그 후로도 숱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땐 고사양 그래픽 칩 수요가 끊기면서 파산 직전에 몰렸다. 황은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삭감하고 그 대신 기술인재를 더 뽑았다. 그때가 2009년이다.

바야흐로 엔비디아의 시대는 오고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엔비디아는 더 이상 그래픽카드 칩 회사가 아니었다.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개발해 적용범위를 컴퓨터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병렬 연산의 GPU 성능은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됐다. 2006년 나온 쿠다(CUDA)는 천문학적 단순 연산을 반복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급 기술이었다. 쿠다는 인공지능(AI)의 딥러닝 핵심 기술로 거듭났다.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구글 알파고의 두뇌에 엔비디아 칩이 들어갔다. AI 빅뱅 신호탄을 쏜 오픈AI의 챗GPT는 쿠다 없이 구동이 불가능하다. GPU 점유율은 창시자 엔비디아가 70%로 시장 절대강자다. 엔비디아 시가총액이 2020년 인텔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달 꿈의 1조달러를 돌파한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엔비디아엔 CEO의 집무실이 따로 없다. 황은 실무회의를 좇아 이 방 저 방 다니며 일을 한다. 중간급 엔지니어가 황을 불러 회의를 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패에 의연하면서도 소통에 탁월한 황의 리더십이 엔비디아의 자산일 것이다. 그가 지난달 말 국립대만대 졸업식에서 한 축사는 기억될 만하다.
그는 자신의 실패담을 언급하며 "걷지 말고 뛰어라(Run, don't walk)"라고 조언했다. "먹이를 위해 달려갈 것인가.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달릴 것인가. 둘을 판별하기 어렵겠지만, 아무튼 달리면 길이 있다.
" 고단하고 지친 한국 청년들에게도 위로가 될 메시지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