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한동하의 본초여담] 몸을 치료하고자 하면 먼저 그 〇〇을 다스려라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17 06:00

수정 2023.06.17 06:00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뱀술이야기가 나오는 <의방유취(醫方類聚)>(왼쪽)와 빈 배 이야기가 나오는 <장자(莊子)>를 저술한 장자 초상화.
뱀술이야기가 나오는 <의방유취(醫方類聚)> (왼쪽)와 빈 배 이야기가 나오는 <장자(莊子)> 를 저술한 장자 초상화.

옛날에 한 의원이 있었다. 그 의원은 특히 마음의 병을 잘 고쳐냈다. 특별하게 약을 쓰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항상 침을 놓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약방에 한 부인이 찾아왔다.
그런데 부인은 남편이 며칠 전 밤에 객사에서 술을 마셨는데, 마신 술에 뱀이 들어있던 것을 알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몸 져 드러누웠다고 했다. 남편은 평소에 뱀이 징그러워서 쳐다보지도 못하는데, 뱀술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구토와 설사를 하면서 전전긍긍하면서 잠을 이루지도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왕진을 좀 해 달라는 것이다.

그 객사는 의원도 잘 아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뱀술을 파는 곳이 아니었기에 ‘무슨 뱀술을 말하는 것인가?’하고 의아해했다. 의원은 “내 오늘 저녁에 왕진을 가보겠소.”라고 말하고서는 부인을 돌려보냈다.

의원은 왕진을 가기 전에 먼저 그 객사에 들어서 정말 뱀술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자 했다. 의원은 객사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면서 혹시 그 남자가 어디에 앉아서 술을 마셨는지를 물었다. 의원은 그 환자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남자가 시켜서 마셨다는 술을 동일한 술잔 그대로 달라고 시켰다. 술잔이 오고 나서 한참 후에 “아~ 이것 때문이었구나.”라고 무릎을 쳤다.

저녁 무렵, 의원은 환자의 집에 도착해서 남편에게 자신과 함께 객사를 가보자고 했다. 남편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절대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의원은 “당신의 병에는 침을 놔야 하는데, 병이 생긴 장소에서 침을 놓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요.”라고 설득을 했다.

의원은 남편과 함께 객사에 도착해서, 남자를 전에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혔다. 그리고서는 같은 술을 시켰다.

술잔이 도착하자 남자는 또다시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 이 술이 바로 그 뱀술이요. 여기 보면 아직도 술잔에 뱀이 들어있는 것이 보이지 않소? 어쩌자고 나에게 다시 뱀술을 먹이려고 하는 것이요?”라고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의원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벽으로 가더니 벽에 걸려 있는 활을 들고 다시 자리에 와서 앉았다. 그랬더니 술잔에 뱀이 사라진 것이다. 사내는 깜짝 놀라 술잔과 벽, 의원의 손에 들린 활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사내가 본 뱀은 바로 벽에 걸려 있던 활이 술잔에 비친 것이었다. 사내의 증상은 그 순간 바로 사라졌다.

사내는 활을 보고서 뱀으로 착각을 했다는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의원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내 오늘 의원님께 ‘활술’을 한잔 대접해 드리겠소이다”라고 하면서 웃었다. 모든 증상이 사라졌으니 침을 맞을 필요도 없었다. 사내는 그날 밤부터 잠도 잘 자고 구역감과 설사도 사라졌다.

어느 날 또 흉통이 있으면서 불안해 죽겠다는 남자가 왔다. 그 남자는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벌렁거리며 누군가 잡으러 오는 것 같은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누군가 저를 해치지 않을까 불안합니다.”라고 했다.

심지어 자신의 집에 있는 우물물에 독을 탈까 봐 두려워서 우물에 뚜껑을 만들어 자물쇠를 채워 놓고서 필요할 때만 우물물을 길러 마신다고 했다. 게다가 다른 가족들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자신만의 우물이 있다고 했다. 불면증과 식욕부진 등은 그러한 불안감이 생기면서 나타났던 것이다.

의원이 진맥을 해보더니 남자에게 “의심은 마음의 병이요. 심장은 신령한 마음인 신명(神明)의 저장고인데, 심허(心虛)로 인해서 지나친 의심과 의혹이 몸을 병들게 한 것이요.”라고 했다. 일종의 불안신경증이었다.

그러고서는 손목에 있는 신문혈(神門穴)에 침을 놓았다. 그러자 남자는 “가슴 부위가 시원해지면서 입안에 침이 고이고 식욕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그 남자는 몇 번의 침치료로 불안함은 사라졌고 가슴의 통증이나 불면증도 사라졌다. 마침내 우물의 자물쇠도 거둬냈다.

신문혈은 심경(心經)에 있는 혈자리로 정신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의미다. 화병이나 불안신경증을 치료하는 특효혈로 가슴 정 중앙부위를 눌렀을 때 자지러지는 듯한 통증이 있을 때도 일도쾌차(一到快差)를 내는 혈자리다. 평소에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날 때 신문혈을 지압해 주면 좋다.

며칠 후에 또 다른 환자가 의원을 찾았다. 그 환자는 항상 두통이 너무 심해서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의원양반, 항상 눈이 충혈되며 두통과 함께 뒷목이 뻐근해서 견딜 수가 없소. 그런데 사람들과 이상하게 한 두 마디만 나누면 화가 나오. 심지어 상대방 눈빛만 봐도 화가 나서 시비가 붙기도 하지요.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지금도 머리가 조이면서 아파죽겠으니 어서 침이나 한방 놔 주시오.”라고 했다.

의원이 진맥을 해보니 현삭맥(弦數脈)이 잡혔다. 현삭맥이 잡힌다는 것은 분노조절장애를 의심할 수 있었다. 특히 현맥(弦脈)은 간병(肝病)으로 간은 분노의 감정과 함께 근(筋)을 주관하는데, 과도한 뒷목의 근육뭉침을 유발해서 두통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의원은 침은 놓지 않고 “내일 아침에 강 건너편 정자에서 봅시다. 강은 물이면서 음(陰)이니 강가의 정자에서 침을 놓으면 당신의 화병(火病)이 단 한 번에 바로 나을 것이요. 바로 수극화(水克火)지요. 혈자리도 심경의 소부(少府)와 간경의 행간(行間)를 사(瀉)하면 좋을 것이요. 내일 아침에 내가 나룻배를 한 척 준비해 놓을 테니, 반대편으로 건너오시오. 나는 미리 정자에 가서 기다리고 있겠소.”라고 했다.

남자는 침 한 번이면 자신의 병이 바로 낫는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남자가 나루터에 도착해 보니 정말 나룻배가 한 척 있었다. 강폭은 꽤 넓었고, 강에는 물안개가 가득 껴 있었다. 남자는 나룻배를 타고 강 건너편으로 노를 저어 갔다. 한참을 저어서 강 중간 정도에 이르자 저쪽에서 배가 하나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남자는 ‘저 배가 피해가겠지’하고 생각하며 계속 노를 저었다. 그런데 그 배는 점차 자신의 나룻배 쪽으로 다가왔다. 남자는 상대편 배를 향해 피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도 상대편 배는 계속 다가왔다. 남자는 이제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배는 계속 다가왔다.

그러자 남자는 심한 욕설을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배는 거의 부딪힐 지경이었다.

남자는 “아~~ 야!!! 이놈아!!! 배가 부딪힌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남자는 화가 치솟았고 배에 탄 사람을 잡아서 족쳐야겠다고 벼르면서 노를 집어 들고 상대의 배로 건너갔다. 그런데 그 배에는 사람이 없었다. 빈 배였던 것이다.

그 순간 그 남자의 화는 스르르 사그라들었다. 남자는 갑자기 화가 사라진 것을 느끼고는 이상하다고 여기면서 겸연쩍어했지만 보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 빈 배는 의원이 건너편에서 밀어서 떠밀어 놓은 것이었다. 의원이 일부러 ‘빈 배’ 정황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남자가 정자에 도착하자 의원은 “자네가 평소에 화를 내는 것은 마치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것과 같네. 그런데 배에 사람이 있으면 화가 나고, 사람이 없으면 화가 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 화는 모두 자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네. 만약 자네가 이처럼 상대방의 배를 비울 수 있다면 아무도 자네와 맞서지 않을 것이니, 결코 자네를 해하지 않을 것이네. 그러니 어찌 화가 나겠는가?”라고 설명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빈 배 경험이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약이 된 것이다.

살다 보면 많은 화가 나는 일이 많다. 그러나 간혹 빈 배에 대고 화를 내는 경우도 많다. 남에게 화를 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화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칠 뿐이다.

몸의 오장육부에는 희노애락비공경(喜怒哀樂悲恐驚)이라는 7가지 마음이 깃들여져 있는데, 과도한 심정(心情)은 원기(元氣)를 손상시키고 결국 몸을 병들게 한다. 특히 분노, 슬픔, 근심과 걱정, 원망, 두려움과 공포 등의 부정적인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옛말에 ‘욕치기신(欲治其身)하려면 선치기심(先治其心)하라’는 말이 있다. 몸을 치료하고자 하면 먼저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 제목의 〇〇은 ‘마음’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의방유취(醫方類聚)> 三元延壽書. 疑惑. 國史補云: 常疑必爲心疾.李蟠常疑遇毒, 鎻井而飮. 心靈府也, 爲外物所中, 終身不痊. 多疑惑, 病之本也. 昔有飮廣客酒者, 壁有雕弓, 影落盃中, 客疑其蛇也.歸而疾作, 復再飮其地, 始知其爲弓也, 遂愈. 疑之爲害如此.

(삼원연수서. 의혹. 국사보에 이르기를 “항상 의심을 품으면 반드시 심병이 된다. 이반이 항상 누가 독을 탈까 의심하여 우물을 자물쇠로 채워두고 길어 마셨다. 심은 신령한 저장고로 외부의 사물에 침해당하면 평생토록 낫지 않는다. 지나치게 의혹을 품는 것은 병이 발생하는 근원이다”라고 하였다. 옛날에 광주에서 온 손님이 객사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침 객사의 벽에 조각되어 있던 활의 그림자가 술잔에 비쳤는데, 이 손님이 뱀이 든 술을 마신 것으로 의심하여 집에 돌아와 병이 났다. 얼마 후 다시 그 객사로 가서 술을 마시다가 비로소 활 그림자가 비쳐서 그런 것임을 알고는 마침내 병이 나았다. 의심의 폐해가 이와 같다고 하였다.)
<장자(莊子)> 外篇. 山木. 方舟而濟於河, 有虛船來觸舟, 雖有惼心之人不怒. 有一人在其上, 則呼張歙之. 一呼而不聞, 再呼而不聞, 於是三呼邪, 則必以惡聲隨之. 向也不怒而今也怒, 向也虛而今也實. 人能虛己以遊世,其孰能害之! (외편. 산목.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와서 그의 배에 부딪치면 그가 아무리 성격이 나쁜 자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그는 다시 소리칠 것이고 더욱 더 큰 소리를 지르면서 욕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만일 그 배가 빈 배라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가는 그대 자신의 배를 그대가 비울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해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동의보감> 夫心者, 君主之官, 神明出焉. 凡喜怒悲忿憂思恐懼, 皆損元氣. 心者, 神之舍, 心君不寧, 化而爲火, 火者, 七神之賊也.(심은 군주의 장부니 신명이 여기에서 나온다.
기뻐하는 것, 성내는 것, 슬퍼하는 것, 원망하는 것, 근심하는 것, 생각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은 모두 원기를 손상시킨다. 심은 신의 집이다.
심이 편안하지 못하면 화가 생기는데, 화는 칠신의 적이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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