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운명이 손에 들고 있는 장난감이다."
오페라 '맥베스' 속 맥베스와 3명의 마녀로 상징되는 운명과의 첫 조우는 강렬하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힘이 노래에 담겨 있어 관객을 꼼짝도 못하게 만든다.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라는 무거운 자리를 맡게 된 이후 무대에 올린 첫 작품이 '맥베스'라는 점에서 '운명'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오페라 '맥베스'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원작으로 오페라의 제왕이라 불리는 주세페 베르디가 작곡한 작품이다. 멕베스는 마녀로부터 스코틀랜드의 왕이 될 것이라 예언을 듣는다. 그의 아내, 레이디 맥베스는 예언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그의 욕망을 부추기고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함께 제거해나간다. 죽음을 밟고 올라간 왕좌에서 맥베스는 죄책감과 망상에 시달리다 결국 지배욕에 희생되고 만다.
베르디는 욕망에 취한 인간을 다룬 심오한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기 위해 그 시대의 오페라 관습을 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택했다. 당시 기교적 화려함이나 벨칸토 창법에 국한되지 않고 캐릭터를 명확하게 표현할 음악적 진실성을 추구하도록 성악가들에게 요구했다. 또 극중 캐릭터에 복종하고 언어와 연극적 측면을 강조했다. 아리아뿐만 아니라 합창에도 무게를 실어 기념비적인 합창곡도 탄생했다.
새로움을 추구했던 베르디의 정신을 이어받아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와 지휘자 이브 아벨은 지난 4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맥베스'를 선보였다. 파비오 체레사는 단 하나의 무대 세트에서 바뀌지 않는 운명의 힘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브 아벨은 '맥베스'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베르디 작품에서 '맥베스'의 조각을 찾아내며 그의 음악 세계 전반을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
국립오페라단은 혹독할 만큼 예술성과 새로움을 추구했던 베르디의 발걸음을 따라가고자 한다. 남은 한해 동안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9월 21~24일)와 '나부코'(11월 30일~12월 3일)로 고품격의 창의적인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라 트라비아타'는 새로운 연출, 지휘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평소 오페라와 친숙해지고 싶었던 관객이라면 국립오페라단이 준비한 무대가 오페라와의 운명적인 시작점이 될 것이다.
국립오페라단장 겸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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