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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美, 때로는 中', G2 갈등 속 이합집산 각국들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28 09:30

수정 2023.09.28 09:30

- 일대일로·브릭스로 '포섭' 공들이는 中
- '맞불' 놓는 美
- 美中 사이에서 셈 따지는 국가들
2022년 11월 만났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사진=중국 외교부 연합뉴스
2022년 11월 만났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사진=중국 외교부 연합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세계도 양국을 중심으로 양분되고 있다. 다만 외교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만큼 필요에 따라 헤어졌다가 만나고 모였다가 흩어지는 이합집산 성격이 짙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친 전략은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도 한다.

일대일로·브릭스로 '포섭' 공들이는 中

28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오는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과 중국 모두 우호국 포섭에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표면적으론 중국의 행보가 보다 눈에 띈다. 중국은 내달 중순으로 예상되는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10주년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청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양자회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담에 이어 북·중·러의 밀착이 속도를 내를 형국이 된다.

중국은 러시아를 포함해 110여개국 대표를 초대했다. 2017년 열린 제1회 포럼 28개국, 2019년 제2회 포럼 37개국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폭 늘어난 수치다.

이는 중국이 그만큼 올해 일대일로 포럼에 공들 들이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한 달 뒤인 11월에 미국 본토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이전에 우호국 포섭을 끝내겠다는 포석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2030년까지 관련 국가에서 760만명이 극단적 빈곤에서 벗어나고 3200만명이 차상위 빈곤에서 탈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전 세계 소득이 0.7~2.9% 상승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지난 10년 동안 152개국과 32개 국제기구가 200여건의 일대일로 협력 문서에 서명했다고 자랑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일대일로 포럼 때 중국을 방문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이 표면상 일대일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김 위원장은 여러 정상이 참여하는 대형 국제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사례가 없었다는 점에선 일대일로 포럼 이후에 별도의 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일대일로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핵심 대외 확장 전략이다. 중국은 10년 전인 2013년 9월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을 육상과 해상으로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추진해왔다. 거대 경제권을 형성해 공동 번영과 협력의 시대를 열어가자는 것이 일대일로의 골자다.

다만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대일로 홈페이지를 보면 정책 대화, 문화교류, 유학생·관광·대학생 등 인적 왕래도 일대일로의 전략 중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중국은 이달 초에는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경제 5국)를 11개국으로 회원국을 늘리는 ‘세력 확장’에 성공했다.

이들 국가를 포함해 그간 23개국(팔레스타인)이 공식적으로 브릭스 가입을 요청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브릭스 외연은 더욱 확장될 여지가 남아 있다. 비공식적으로 관심을 표명한 국가까지 포함할 경우 40여개국에 달한다고 남아공 외교부는 설명했다. 브릭스는 태생 자체가 미국 중심의 주요 7개국(G7)에 대항마로 출범했다.

중국 매체는 세계은행이 발표한 2022년 경제통계를 인용, 확장판 브릭스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종전 25.77%에서 28.99%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또 인구는 세계의 46%(36억명 이상), 국토 면적은 32%에 달한다고 전했다.

중국인민대학교 중앙금융연구원은 "브릭스 인구가 늘었다는 것은 광범위한 노동력 시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젊은 인구 구조로 더욱 유망한 소비 시장을 보유하게 된다는 것"이라며 "이는 브릭스 국가가 세계 경제발전에서 시장이 크고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이보다 앞선 8월에는 아프리카연합(AU) 회원국 등 50곳에 가까운 아프리카 국가의 대표 100여명을 불러 중국-아프리카 평화안보포럼을 개최했다. 항저우아시안게임의 경우 주로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 국가의 고위급이 개막식에 참석했지만, 중국은 이들 중 일부와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시키는 등 당근을 주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에겐 시 주석의 한국 방문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육상·해상 신실크로드 '일대일로'. 그래픽=연합뉴스
중국 육상·해상 신실크로드 '일대일로'. 그래픽=연합뉴스

'맞불' 놓는 美

미국의 ‘맞불’ 전략도 관심거리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G20 정상회의에서 인도와 중동, 유럽의 항구와 철도를 연결해 에너지와 물자를 교역하는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 구상을 발표했다. 이 사업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이스라엘, 요르단, 유럽연합(EU) 등이 참여한다.

사업의 목적은 중국의 일대일로와 유사하다. 일대일로 역시 연선 국가들의 공동 번영과 화합, 저소득·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건설을 표방하고 있다.

중국이 항만, 철도 등 건설을 명분으로 저소득·개도국 국가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도 중동·유럽 국가들과 뭉치는 방식으로 그 역할을 대신 맡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럴 경우 저소득·개도국은 굳이 중국이 아니라도 자국 인프라 건설과 물자 교역 등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생긴다.

미국의 일대일로 견제는 일찌감치 진행돼 왔다. 미국은 2021년 6월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를 통해 ‘더 나은 세계재건’(B3W) 출범을 주도했다. B3W는 지금까지 중국이 저소득국이나 개도국에 대한 인프라 지원으로 세력을 넓혀 온 만큼 이제부터라도 그 역할을 미국 중심의 동맹국이 맡겠다는 취지다.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에 인도, 사우디, UAE, 이스라엘 등이 포함됐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인도는 중국과 라이벌 관계이면서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 협의체) 참여국이기도 하다. 인도를 내세워 인도·태평양 전략상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사우디와 UAE는 지난달 말 브릭스의 새 회원국으로 초청받았다. △브릭스가 주요 7개국(G7) 대항마 성격을 가진 점 △사우디가 일대일로 참여국인 점 △사우디·UAE가 중동의 핵심 경제국이자 산유국이라는 점에서 이들 국가가 중국으로 기울면 미국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경우 이란과 긴장 관계이다. 이란도 브릭스 새 회원국에 이름을 올렸고, 일대일로 참여국 명단에 들어 있다.

이와 함께 바이든 대통령은 친환경 연료를 전 세계에 보급하는 글로벌 바이오연료 동맹도 출범시켰다. 동맹에는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모리셔스, UAE 등이 참여했다. 방글라데시와 싱가포르는 옵서버 국가가 됐다.

이 중 아르헨티나는 UAE와 더불어 내년부터 브릭스 새 식구가 된다. 방글라데시와 싱가포르는 일대일로에 동참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를 마친 뒤 베트남을 방문해 양국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서 최고 수준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또 오는 11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워싱턴DC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하는 등 중국 주변국가와 협력을 심화한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또한 일대일로 연선에 포함돼 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현지시간) 중국 항저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국무총리실 제공 뉴시스
항저우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23일(현지시간) 중국 항저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국무총리실 제공 뉴시스

美中 사이, 셈 따지는 국가들

바꿔 말하면 인도, 사우디, UAE, 아르헨티나, 방글라데시,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은 중국의 일대일로와 확장판 브릭스에 동참하면서 미국이 내미는 손도 동시에 잡고 있는 셈이다.

미중 역시 상대국 견제와 별도로 소통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을 잇따라 중국으로 보냈다. 중국도 외교라인 최고위급을 통해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메시지를 송출하는 중이다.

한국도 반중국 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항저우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항저우아시안게임은 46억명의 축제라지만, 정작 개막식에 중국을 찾은 국가 지도자급은 7명에 불과했다. 중국이 한 총리 참석을 '한국의 성의'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6일 자국 전문가들을 인용, 이에 대해 “스포츠 외교로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긴장을 완화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풀이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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