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fn사설] 금융기관 보이스피싱 배상에 합리적 근거는 필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05 18:38

수정 2023.10.05 18:38

금융사고 예방 위한 협약식 열려
보상분담 비율 등 투명한 결정을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비대면 금융사고 예방 추진을 위한 협약식에서 이복현 금감원장과 19개 국내 은행장 등 참석자들이 조해근 우정사업본부장의 축사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비대면 금융사고 예방 추진을 위한 협약식에서 이복현 금감원장과 19개 국내 은행장 등 참석자들이 조해근 우정사업본부장의 축사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보이스피싱으로 피해를 본 금융소비자가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금융감독원은 5일 비대면 금융사고 피해 자율배상 기준인 '비대면 금융사고 책임분담기준'을 마련했다. 이 방안의 핵심은 비대면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금융기관의 책임 여부를 따져 피해자가 은행에서 피해금액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동안 억울하게 사기를 당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으려면 소송을 해야 했다.
보이스피싱이 자살까지 부르는 현실에서 이번 대책은 공감이 간다.

다만 금융기관의 책임을 따질 기준을 합리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누가 피해에 대한 과실이 있는지, 어느 정도 과실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다. 이날 발표된 기준에 따르면 비대면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 은행이 사고예방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이용자의 과실은 어느 정도 되는지 따지게 돼 있다. 양측의 과실에 따라 배상할 책임의 분담비율과 배상액을 정하자는 것이다. 가령 은행이 비대면 금융거래에서 벌어질 금융사기를 예방하기 위한 악성앱 탐지체계를 도입했는지 등 예방활동의 정도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은행의 예방활동과 사건 발생 시 즉각적 대처를 강조한 게 이번 방안의 핵심이다. 이러한 조치가 미흡하면 은행의 과실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용자의 과실을 따지기 위한 기준도 정했다. 이용자가 신분증 정보와 인증번호, 이체용 비밀번호를 노출하거나 제공했는지에 따라 과실 정도가 정해진다. 이용자가 휴대폰에 본인 신분증 사진이나 비밀번호를 저장해둔 상태에서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피해구제에서 불리하다. 이용자가 신분증 사본을 휴대폰에 보관한 행위를 과실로 인정한다는 얘기다.

보이스피싱에 따른 금융사고가 벌어질 때 이용자의 중과실로 간주하던 관행에 비하면 상당히 진전된 합리적 기준이다. 그럼에도 이런 기준을 놓고 다툼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만약 금융 앱을 사용하지 않던 고객에게서 의심거래가 엿보이는데 이를 탐지하지 않았다면 사고예방이 미흡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때 은행은 피해액의 20∼50%를 물어내야 한다. 피해상황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으면 은행과 이용자 간 과실 공방이 벌어질 수 있다. 피해액도 사건에 따라 고무줄처럼 달리 적용될 수 있다. 과실의 주체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점도 고려할 문제다. 보이스피싱 사건에는 이용자 개인뿐만 아니라 금융기관과 통신사까지 얽혀 있다. 과실의 발생 원인이 딱 부러지게 어느 하나라고 단정하기가 애매한 사건이 비대면 금융사고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억울한 피해자들에게 금전적 배상의 길이 열렸다는 점은 환영한다. 다만 시행 과정에서 과실을 둘러싼 갈등이 비화된다면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꼴과 같다.
앞으로 남은 기간에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합리적 배상기준을 마련하는 데 만전을 기하길 바란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