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유통

티웨이항공, I am 실망이에요. [이환주의 내돈내산]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29 17:00

수정 2023.10.29 17:00

[파이낸셜뉴스]
지난 29일 새벽, 베트남 호치민 국제 공항에서 전날 오후 10시35분 인천으로 출발 예정이던 항공편이 안전 점검 이유로 취소되자 승객들이 근처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긴 줄을 만들고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환주 기자
지난 29일 새벽, 베트남 호치민 국제 공항에서 전날 오후 10시35분 인천으로 출발 예정이던 항공편이 안전 점검 이유로 취소되자 승객들이 근처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긴 줄을 만들고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환주 기자

호치민 공항에서 인천행 항공편 취소로 인해 기내에 실었던 수화물들이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환주 기자
호치민 공항에서 인천행 항공편 취소로 인해 기내에 실었던 수화물들이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환주 기자

"수화물 무게 잴 수 있게 라인에 올려주세요."

저비용항공사(LCC)를 이용할 때 마다 항상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하는 항공편에 탑승하기 전, 각종 기념품으로 가득 채운 여행가방의 무게를 재는 순간. 공항에 오기 전 호치민 7군에 있는 롯데마트에서 코코넛커피 6여섯 박스, 말린 과일, 과자, 견과류 등을 가득 채운 가방이었다.
부피가 큰 커피 상자는 모두 버리고 내용물만 야무지게 빈틈 없이 캐리어를 가득 채웠다. 어린 시절 자갈, 모래, 물을 순서대로 비커에 가득 채우는 것처럼 캐리어에 옷가지, 물품, 일회용 커피 스틱을 순서대로 꾹꾹 눌러 담았다.

무료로 이동 가능한 무게는 10kg 이었으나 전자 바늘의 숫자는 12.5kg을 표시했다. 순간 머리속으로 '초과 수화물 벌금이 얼마일까?', '초과 수화물 벌금을 내느니 차라리 커피를 버리는 게 나을까?', '캐리어의 짐 일부를 지금 매고 있는 백팩에 옮겨 담아도 되는지 물어볼까?' 등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긴장해서 보딩 게이트의 직원이 영어로 건넨 말을 못 알아 듣고 벌금을 내야 하는지 물어보자 티웨이항공의 직원은 "원하면 캐리어를 무료로 위탁 수화물로 보내준다"고 친절하게 안내해 줬다. 벌금을 낼지 고민하던 차에 위탁 수화물 서비스까지 제안 받자 마음이 입춘에 얼었던 계곡물이 녹아 내리듯 따뜻해졌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앞으로의 몇 시간이 지옥처럼 지루하고 길게 이어질 줄은.

■예고 없는 게이트 변경, 그리고 지연

지난 28일(현지 시간), 인천행 비행기 출발 3시간 전인 오후 7시35분께, 베트남 호치민의 떤선녓 국제공항에서 체크인을 마쳤다. 비행기 티켓에는 출발 30분 전인 오후 10시5분까지 탑승을 마쳐야 한다는 것과 비행기의 출발 게이트는 15번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남은 베트남 돈을 처리하기 위해 면세점 쇼핑을 마쳤다. 여유있게 15번 게이트로 갔는데 티웨이항공의 비행기가 아닌 다른 회사의 비행기가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게이트 위에 있는 TV 화면을 통해 예정된 항공편이 10번 게이트로 변경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10번 게이트로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천행 항공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아 있는 의자도 없고, 콘센트도 없었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한참 떨어진 게이트로 이동해 스마트폰을 충전하면서 남은 시간을 기다렸다.

탑승 완료 시간 10분 전인 오후 9시55분께 출발 게이트로 다시 왔다. 남아있는 좌석이 없어 바닥에 철푸덕 앉아 탑승을 기다렸다. 하지만 탑승완료 시간인 오후 10시5분까지도 승객 탑승은 전혀 이루어 지지 않았다.

토요일 밤이었고, 그동안 쌓인 여행의 피로와 배고픔, 더위가 짜증으로 슬슬 전환돼고 있었다. 오후 11시쯤 몇몇 승객들이 직원들에게 현 상황을 따지듯 물어봤고, 비행기 정비로 게이트가 변경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수백 명의 승객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별도 안내 방송은 전혀 없었다. 다만 게이트 입구에 영어와 어설픈 한국어 표현이 적힌 A4 종이만 덜렁 붙어 있을 뿐이었다. '항공기지연안내'라는 제목이었다.

금일 22:35 분 출발 예정인 티웨이항공 122 편은 항공기 안전 점검으로인해 지연 출발 예정입니다. 정확한 출발시간은 정해지는 대로 재 안내드리겠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기자가 받은 인천행 티켓에는 탑승 게이트가 15번이라고 나와 있다. /사진=이환주 기자
기자가 받은 인천행 티켓에는 탑승 게이트가 15번이라고 나와 있다. /사진=이환주 기자

28일 취소된 인천행 티웨이항공 항공편은 탑승게이트가 15번, 10번으로 한 차례 변경된 뒤 이후 다시 11번으로 변경됐으나 결국 출항 자체가 하루 뒤인 29일로 연기됐다. /사진=이환주 기자
28일 취소된 인천행 티웨이항공 항공편은 탑승게이트가 15번, 10번으로 한 차례 변경된 뒤 이후 다시 11번으로 변경됐으나 결국 출항 자체가 하루 뒤인 29일로 연기됐다. /사진=이환주 기자

항공기 지연이 1시간을 지나면서 승객들은 조금씩 동요하기 시작했다. 영상 통화를 하며 가족에게 현재 상황을 알리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콘센트가 있는 좌석과 복도는 이미 스마트폰을 충전하는 사람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 오자 게이트에는 또 다른 안내문이 붙었다. 안전 점검으로 인해 항공기가 지연되고 있으니 29일 0시 30분에 기내 식당에서 음료와 간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이었다. 짜증이 슬슬 분노로 바뀌려 하고 있었다. 간식을 제공한다는 다른 층에 있는 게이트 주변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스마트폰으로 20분 단위로 알람을 맞추고 벤치에 누워, 생수병에 물을 채워 베개 대용으로 썼다. 0시 40분쯤 간식을 수령했다. 기내에서 먹는 은박 코일에 들어있는 도시락과 캔음료 1개를 제공받았다. 맛은 없었지만 배가 고파서 일단은 남김 없이 먹었다.

도시락을 먹고 다른 테이블에 있는 한국인 분에게 혹시 이후 일정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지 물었으나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아무 정보도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항공편은 아예 취소가 되었고, 항공사에서 호텔과 호텔까지의 픽업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

■"모르는 사람과 같은 방을 쓰라고?"

밥을 먹고 다시 10번 탑승 게이트로 내려오자 승객들의 분노와 짜증은 극에 달해 있었다. 한 남성 승객은 욕설을 섞어 가며 일행에게 "아니 시X, 지연이 되면 된다고 제대로 설명을 해줘야 할 것 아냐. 어떻게 여기 한국 직원 한 명이 없냐"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일요일 아침에 한국에 도착 예정이었던 다른 많은 승객들도 한국의 직장, 가족 등에게 연착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호치민에서 한국을 가려했던 몇몇 외국인들도 하염 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간호사로 보이는 한 여성은 족히 10줄은 되어 보이는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하며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오해없이 설명할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었다. 그 여성은 동행에게 "어차피 (병원에서) 대체자를 구할텐데 내가 대체자를 구해야 한다고 쓰면 버릇없어 보이니까 그냥 담백하게 현재 상황만 설명하는게 나을 거야"라고 말했다. 한국에 직장이 있어 보이는 한 베트남 여성은 사장님에게 현재 상황을 한국 말로 차분히 설명하고 있었다.

또 다른 안내 문이 붙었다. 아래와 같은 내용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금일 22:35분 출발 예정인 티웨이항공 122 편은 항공기 정비 부품 교체로 출발지연이 예상됩니다. 예정 출발시간은 10월 29일 15시 예정입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2인 1실로 제공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티웨이항공의 출발 지연 관련 안내문. 한국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직원이 없고, 별다른 기내 안내 방송 없이 안내가 이뤄지면서 모르는 사람과 2인 1실로 이용할 수 있다는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사진=이환주 기자
티웨이항공의 출발 지연 관련 안내문. 한국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직원이 없고, 별다른 기내 안내 방송 없이 안내가 이뤄지면서 모르는 사람과 2인 1실로 이용할 수 있다는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사진=이환주 기자

인천행 항공편 지연으로 티웨이항공이 제공하는 호텔 이동 버스로 승객들이 탑승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환주 기자
인천행 항공편 지연으로 티웨이항공이 제공하는 호텔 이동 버스로 승객들이 탑승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이환주 기자

일요일 오후 3시 출발이면 한국 시간으로는 도착이 오후 10시에서 11시 사이가 될 것이었다. 몇몇 승객들은 월요일 공항 도착 이후 이동편을 걱정하거나 월요일 출근에 대해 걱정하면서 동요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환불을 해달라는 승객도 있었다.

예정 출발 시간보다 약 3시간이 지난 29일 오전 1시 30분쯤, 호텔로 이동하기 위한 긴 줄이 게이트 앞에 다시 생겼다. 한 중년 남성은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베트남 직원에게 "혼자 온 사람들도 많은데 모르는 사람과 2인 1실로 자라고 하는게 말이 되냐"며 격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기자 역시 쌓였던 피로가 몰려 오며 될대로 되라는 식이었지만 정말 모르는 사람과 한 방에 배정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공사가 제공해준 버스를 타고 다수의 승객들은 호치민 공항에서 약 10분 정도 떨어진 4성급 호텔에 도착했다. 로얄파크 사이공이란 호텔로 1박에 10만원~13만원 정도 하는 호텔이었다. 다행히 기자는 따로 방 하나를 배정 받았다.

아마도 대부분 1인 승객들은 별도 방을 제공받은 것 같았다. 중간에 제대로 한국말로 소통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보니 "동행이 있는 승객은 2인 1실, 개인 승객은 1실"이라는 설명이 빠졌거나, 승객들의 불만으로 변경이 된 것 같았다.

■16시간 25분 지연, 피해 배상은?

호텔에 도착한 뒤 피로가 쏟아져 샤워를 하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다음날의 일정과 계획에 대한 걱정으로 쉽게 잠이 오지는 않았다. 기자 역시 일요일 예정이던 동료의 결혼식에는 갈 수 없게 됐다. 사업을 하거나, 미팅이 잡혀 있던 다른 모든 승객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미국처럼 소송이 많은 나라라면 집단 피해 배상 소송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항공사는 지연에 따라 호텔 숙박비, 왕복 교통비, 호텔 조식비 등을 지급한다고 적힌 A4 용지를 호텔 체크인을 할 때 개별 승객에게 나눠줬다. 29일 아침에 잠을 깨니 방 문틈 사이로 "29일 오전 11시에 호텔에서 모닝콜을 해주고 정오에 공항으로 가는 픽업이 있을 예정"이라고 적힌 메모가 있었다.

현재 시간은 베트남 현지 시간으로 오전 11시13분이다. 약 50분 뒤에 기자는 항공사가 제공해준 호텔 버스를 타고 공항에 갈 예정이다.
다시 한번 입국 수속을 거치고, 운이 좋아 또 한번의 지연이 없다면 이날 오후 10시에서 11시쯤 한국에 도착할 것이다. 해당 비행기 탑승객은 약 180여명 정도로 이들 승객이 낭비한 시간을 합하면 약 3000여 시간에 달한다.
이 기사의 엠바고(온라인 노출)는 비행기가 호치민 공항을 뜨는 29일 오후 3시(한국 시간 오후 5시) 이후가 될 예정이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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