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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 가자 사태 구경만...하마스 붕괴 직전에나 개입할 듯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02 05:00

수정 2023.11.02 05:00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10월 말 이후로 도발 강도 낮춰
헤즈볼라 내부에서도 이스라엘과 정면충돌 원치 않아
하마스 붕괴가 '레드 라인', 가자지구 상태 나빠지면 개입할 수도
시리아 및 이스라엘 북부 노린 저강도 도발로 긴장만 유지할 듯
10월 27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지지자들이 다리에 헤즈볼라 깃발(왼쪽)과 팔레스타인 깃발을 나란히 게양한 가운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연대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10월 27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지지자들이 다리에 헤즈볼라 깃발(왼쪽)과 팔레스타인 깃발을 나란히 게양한 가운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연대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약 40년 동안 팔레스타인과 함께 이스라엘과 싸웠던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이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작전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관계자들은 레바논 국내 사정이 좋지 않은데다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 역시 이스라엘과 정면충돌을 원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는 것 보다 지금처럼 저강도 무력시위로 이스라엘군의 병력과 관심을 분산시키는 것이 현명하다는 평가도 있다.

헤즈볼라는 누구인가?
헤즈볼라는 1985년에 결성된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다.
아랍어로 ‘신의 당’이라는 뜻을 지닌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1982년에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소탕하려고 레바논 남부를 침공하자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에서는 1979년 혁명으로 이슬람 정부가 들어섰고 당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이란 최고지도자는 같은 종파인 헤즈볼라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에서 활동하며 각종 테러를 벌였고 1992년에는 레바논 정계에도 진출했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는 의회 128석 가운데 61석을 확보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2020년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 사고 이후 경제 파탄으로 정부가 흔들리는 가운데 레바논 정규군보다 강력한 군사조직으로 거듭났다.

범아랍 매체 알자지라방송은 10월 31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서 헤즈볼라의 병력이 10만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인원은 약 6만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알자지라는 헤즈볼라의 군사 역량이 하마스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지배하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 발사로 도발하는 수준이지만, 헤즈볼라는 실제로 이스라엘 영토를 조금이나마 빼앗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2000년 레바논 남부에서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격렬하게 저항했다. 2006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다시 침공할 당시(제 2차 레바논 전쟁)에는 중국산 대함미사일로 이스라엘 해군 호위함을 공격하기도 했다.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헤즈볼라는 시리아의 시아파 정부군을 통해 다수의 장거리 미사일 및 야포를 입수했다고 알려졌다.

지난 5월 21일 레바논 남부 아아람타에서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대원들이 군사 훈련에 앞서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AP뉴시스
지난 5월 21일 레바논 남부 아아람타에서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대원들이 군사 훈련에 앞서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AP뉴시스

하마스 붕괴 전까지 일단 관망
헤즈볼라는 1987년 하마스 창설 이후 지속적으로 하마스를 지지하며 팔레스타인 독립 투쟁을 도왔다. 헤즈볼라는 하마스가 10월 7일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하여 민간인을 학살하자 즉각 하마스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이스라엘 북부의 레바논 국경지대에서 이스라엘 진지를 향해 포격을 가했다. 이스라엘은 이에 맞서 무인기(드론)과 공습, 포격을 이용해 반격했다. 지난 10월 30일 기준으로 약 3주 동안 이스라엘 드론에 사망한 헤즈볼라 대원은 47명으로 2차 레바논 전쟁 당시 사망자(263명)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러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이 10월 27일부터 본격적으로 가자지구에 진입하여 하마스와 지상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도발 강도를 높이지 않고 있다.

레바논의 압달라 보우 하빕 외무장관은 10월 31일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헤즈볼라를 포함하여 모든 레바논 사람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헤즈볼라와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그는 "서방 국가들이 레바논 정부에게 헤즈볼라의 전쟁을 막으라고 압력을 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헤즈볼라와 대화해 보니 그들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NYT는 2020년 채무불이행(디폴트)를 선언한 레바논 국민들이 경제난으로 인해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미국이 2개의 항공모함 전단을 동지중해에 배치한 상황에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 제 2의 전선을 형성하면 미국에게 이번 사태에 직접 개입할 구실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의 레바논 정부 관계자는 헤즈볼라가 10월 4주차 이후 이스라엘 국경에서 도발을 자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계자에 의하면 헤즈볼라는 연계된 무장 조직들에게 하마스가 좋은 위치에서 방어중이니 헤즈볼라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밝혔다.

다만 보우 하빕은 가자지구의 상황이 정말 나빠지면 헤즈볼라 역시 조직 안팎에서 대응하라는 압력을 받게 된다고 내다봤다.

레바논 관계자는 헤즈볼라가 설정한 '레드 라인'이 하마스의 붕괴라며 하마스가 무너질 상황이면 헤즈볼라가 개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 지상전을 시작하며 인질 구출 및 하마스의 파괴가 작전 목표라고 선언했다.

지난 10월 15일 이스라엘과 접한 레바논 남부 국경지대의 알 부스탄 마을에서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백린탄 파편들이 떨어지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10월 15일 이스라엘과 접한 레바논 남부 국경지대의 알 부스탄 마을에서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백린탄 파편들이 떨어지고 있다.AP연합뉴스

저강도 도발 및 공포 조성 이어갈 듯
외신들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정면충돌 대신 간접적인 방식으로 하마스를 도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중동 전문 매체 암와즈미디어는 10월 31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의 에스마일 카아니 쿠드스군 사령관이 10월 8일 레바논 베이루트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쿠드스군은 이란의 정치군대인 혁명수비대에서 해외 작전을 지휘하는 분과로 해외 친이란 무장조직을 지원하고 첩보 활동을 한다.

매체에 따르면 카아니는 협의를 위해 이란 테헤란을 방문한 10월 16∼20일을 제외하고 10월 내내 베이루트에 머물렀다. 그는 이스라엘과 확전 가능성에 대비해 중동 내 반이스라엘·반미 세력의 작전을 조율중이라고 알려졌다. 또한 이란의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장관은 10월 31일 카타르에서 하마스 정치국의 지도자를 맡고 있는 이스마일 하니예를 만나 가자지구 상황을 논의했다.

지난 10월 22일 NDTV를 포함한 인도 매체들은 영국 통신사 등을 인용해 이란 역시 내부적으로 복잡한 상황 때문에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정면충돌을 원치 않는다고 전했다.

관계자에 의하면 이란 정부는 헤즈볼라의 제한적인 이스라엘 군사 표적 공격 및 중동의 미군을 노리는 이란 연계 조직들의 저강도 공격을 허용하고 지지할 계획이다. 대신 이란 정부는 이란이 직접 개입할 수밖에 없는 전면적인 분쟁은 차단하기로 했다.

레바논 싱크탱크 카네기 중동센터의 마하 야히아 소장은 "헤즈볼라의 대응 선택지가 다양하다"며 이란과 헤즈볼라가 동시에 개입중인 시리아 내전을 언급했다. 그는 "헤즈볼라는 굳이 지상에서 이스라엘을 급습할 필요가 없다"면서 "시리아 전선을 이용해 이스라엘 외부에서 공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반드시 이스라엘 내부에서 공격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알자지라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에 저강도 도발을 이어가 이스라엘의 병력을 붙잡아둘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헤즈볼라가 장거리 미사일을 이용해 하마스가 미처 노리지 못한 하이파 등이 이스라엘 북부 도시를 공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매체는 헤즈볼라가 이러한 저강도 도발을 지속한다면 중동 및 이슬람 세계에서 인기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돌발 상황을 경계해야한다고 분석했다.

이란의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장관(왼쪽)이 10월 31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하마스 정치국의 지도자를 맡고 있는 이스마일 하니예와 악수하고 있다.<div id='ad_body3' class='mbad_bottom' ></div>AP연합뉴스
이란의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장관(왼쪽)이 10월 31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하마스 정치국의 지도자를 맡고 있는 이스마일 하니예와 악수하고 있다.AP연합뉴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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