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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숙 칼럼] 카카오가 어쩌다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20 18:39

수정 2023.11.20 18:39

미래 내다본 김범수 신화
문어발 측근 경영에 추락
직접 나서 구태 도려내야
[최진숙 칼럼] 카카오가 어쩌다
5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을 간 집안의 기둥이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86학번) 재학 시절엔 극한의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대고, 가족 생계를 책임졌으며 한편으론 노는 것도 열심이었던 낙천주의자. 카카오 김범수 창업자의 성공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얼핏 봐선 흔한 분투기일 듯싶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어느 날 후배 하숙집에서 PC통신 현장을 처음 보고 그는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게 뭐지?" 웹 너머 보이지 않는 상대와 채팅이 가능한 시대를 목격하고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던 공대생은 이 네모난 창에 자신의 미래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어제를 버려라' 다산북스). 컴퓨터 관련 출신들이 주로 갔던 삼성SDS에 입사한 것이나, 이 회사의 신사업 유니텔 출시를 주도하고 흥행을 이끈 것은 그 연장선이었다.

5년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창업 출사표를 던졌을 때 수중에 갖고 있던 돈은 500만원이 전부였다.
명동 사채시장까지 기웃거려 '영끌'한 돈으로 한양대 앞 국내 최대 규모의 PC방을 개업한다. 단숨에 명소로 떠올랐다. PC방 구석 3평 남짓한 룸에서 절친들과 6개월 개발 끝에 내놓은 것이 한국 게임사에 한 획을 긋게 되는 '한게임'이다. 그들은 전국 PC방을 돌며 공짜로 이걸 깔아줬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한게임을 밑천으로 포털 네이버와 손잡았던 것이 양사 모두에 신의 한 수가 된다. 당시 포털 후발주자였던 네이버는 한게임을 품고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NHN으로 간판을 바꾼 네이버는 지식 검색엔진 날개를 단 뒤 야후, 다음을 순식간에 밀어냈다. 그사이 유료화로 대박을 터트린 한게임은 해외로 뻗어가고 있었다. 김범수의 고민은 다시 꿈틀댔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이 유명한 말을 던진 것이 이 무렵이다. NHN을 떠나 미국에 홀로 남았던 때가 2007년. 바야흐로 스티브 잡스의 주머니에서 나온 아이폰이 사람들 손에 하나둘 들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모바일 메신저 신세계가 이 모험가의 눈에 들어왔다. 김범수 신화의 2막은 그렇게 열렸다.

왓츠앱, 엠앤톡이 먼저 출시됐고 카카오톡이 한발 늦긴 했으나 오래지 않아 시장을 제압한다. 스마트폰 기기에 최적화된 소통창구로 만들 것, 사람의 가장 편안한 상태와 본성을 거기에 담을 것. 이 미션에 당시 개발자들은 사력을 다했다. 카카오톡이 5000만명 가입자를 거느린 국민 메신저가 된 것은 여기에 기반한다. 기술과 혁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소비자 마음을 우선으로 뒀기 때문이다.

2010년 닻을 올린 카카오는 불과 10여년 만에 자산 34조원(6월 현재), 재계 서열 15위 기업으로 뛰어올랐다. 500만원이 전재산이었던 김범수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제치고 한국 부자 1위(블룸버그 집계)에 등극했다. 한국 기업사에 이런 기적도 없다. 카카오가 이 영광을 계속 이어가길 많은 이들이 바랐을 것이나 급히 몸집을 키웠던 카카오는 순식간에 시장의 집중포화를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 역시 진기한 기록이다.

카카오택시 수수료 적정선을 대통령까지 나서서 지적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카카오가 그만큼 상생에 인색한 기업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대리운전 같은 골목상권에 빅테크 기업이 숟가락을 얹고 문어발 확장을 서슴지 않았던 일에 많은 이들이 공분했다. 그래도 카카오는 꿈쩍 안 했다. 측근들의 잇단 주가 먹튀 행보는 눈이 휘둥그레질 사건이었다. 그러고도 경영진은 먹튀 당사자들을 은근슬쩍 다시 기용했다. 급기야 창업자와 측근들은 시세조종 혐의로 검찰 수사 칼날 위에 섰다.

김범수 창업자는 비로소 수염까지 밀고 나와 모든 사업의 원점 재검토를 선언했다. 외부 준법감시 기구를 띄우고 종합쇄신책도 내놓을 것이라고 한다.
비슷한 다짐이 이전에도 없었던 게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PC방 시절의 간절함이다.
창업자가 직접 나서서 구태를 도려내고 신뢰회복, 벤처정신을 살리는 것. 그것밖에 길이 없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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