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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식의 과학2030] 과학기술 인재양성엔 장기적 투자 필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10 19:11

수정 2023.12.10 19:11

한국 과학기술 발전 이끌
미래세대 투자 포기 못해
R&D예산 확보 발등의불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새해를 2주 남겨놓은 요즘, 주위 사람들이 종종 2024년 과학기술계 소식을 묻곤 한다. 그때마다 꼭 소개하는 내용이 있다. 다가오는 1월부터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단체 중 하나인 미국 물리학회 회장을 한인 과학자가 맡는다는 기쁜 소식이다. 입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한 뒤 충돌시켜 우주탄생 초기를 재현하는 입자물리학의 석학으로, '충돌의 여왕'으로 불리는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더 놀라운 것은 미국 정부와 의회가 과학자문을 하고, 노벨 물리학상 배출의 산실인 미국 물리학회를 이끌 이 한인 리더가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토종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과학자로서 김영기 교수가 보낸 40년의 시간은 한국의 인재가 세계적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재양성에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올해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그야말로 '20년 투자의 결실'과도 같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과총은 2002년부터 한인 과학자 청년들과 교류하는 '한민족청년과학도포럼(YGF)'을 운영해왔는데, 초창기 학생 참가자들이 이제 세계 각지 한인 과학자 커뮤니티의 기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올해 재러한인과학기술자협회 회장인 강 바실리 프레자트사 최고기술책임자(CTO)가 YGF 2기 출신이고, 차기 미국 통계학회 회장인 이지현 플로리다대 교수, 차기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회장인 오태환 로체스터공대 교수가 바로 그들이다.

현재 전 세계 19개 국가에서 2만명 넘는 한인 과학기술인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인적 네트워크와 국제적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국제협력과 해외진출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오래전 뿌려둔 씨앗들이 활짝 꽃을 피워 과학기술 강국으로서 한국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이 세계 각지와 활발히 교류하여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점차 빨라지는 과학기술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인재에 대한 투자는 더욱 중요하다. 올 한 해 사회 전 영역을 뒤흔든 챗GPT는 과학기술이 사회변화의 제1 원동력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사람들은 생성AI 기술이 너무 빨리 현실이 된 것에 깜짝 놀랐고, 또 열광했다. 시장에서는 생성 AI를 적용한 상품들이 쏟아지고, AI인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서둘러 2027년까지 AI인재를 20만명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런데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과학기술 인재를 키워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한 명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배워야 할 수많은 지식과 이러한 지식을 공유·발전시키는 지식의 생태계가 성숙해지는 데는 반드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적 지식이 산업의 영역으로 넘어와 상용화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있다.

과학기술 투자와 성과 사이의 시차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인재를 키우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단순히 기술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 융복합 시대에 맞는 능력을 갖춘 미래세대를 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재들이 꿈을 잃지 않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안정적 환경을 마련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실현하는 첫 관문이 R&D예산 확보이다. 과총은 지난 10월 23일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과의 면담을 시작으로 박성중, 송언석, 조승래, 강훈식, 윤재옥 의원을 만나 과학기술예산에 대한 국회 지원을 요청하고, 추경호 부총리와도 면담했다.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는 결코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꾸준한 투자 끝에 제2, 제3의 김영기 교수 같은 열매가 맺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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