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차이나 톡] 한·중 관계, 새로운 균형점 찾기

이석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2.26 18:26

수정 2023.12.26 18:26

이석우 베이징특파원·대기자
이석우 베이징특파원·대기자
새해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성탄절이나 연말 분위기같이 북적이고 들뜬 세모 풍경은 찾기 어렵다. 그 대신 72년 만에 가장 매서운 겨울을 맞고 있는 베이징은 내년 2024년을 향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근엄하고 강한 메시지들로 가득했다.

시 주석은 이달 들어서도 각 분야의 최고 회의들을 주재하며 주요 지시나 담화를 발신했다. 베트남 방문 직전인 11~12일 열렸던 경제공작회의는 내년도 경제운용 방향과 정부 방침을 결정했고, 23~24일 농촌공작회의에서는 농촌·농업·농민 문제라는 3농 문제 해결방안들을 제시했다. 21~22일 열린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주제로 한 정치국 회의에서는 정치사상 및 행동의 통일성을 강조했다.

40여년 이어지던 집단지도 체제라는 관례를 깨고 모든 결정의 정점에 서 있게 된 그는 국가 전반에 대한 강력한 장악력 속에서 역사를 의식하고 결정하는 오너형 지도자라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공동부유라는 화두를 국가 지향점으로 끌고 나왔고,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도를 높였다. 함께 강국 건설을 위한 기술생태계 혁신과 기술패권 구축에 유별난 애착을 쏟아붓고 구체적인 시간표를 갖고 밀어붙이고 있다.

언론들은 그의 발언과 회의 결정들을 강조하면서 올 한 해 동안 국내외적 어려움을 딛고 얻어낸 성취들을 부각시켰다. 내년에도 5% 성장률 달성을 시사하면서 중국 경제가 회복세임을 여러 수치를 들어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중국 인민폐가 일본을 제치고 4번째로 많이 쓰인 국제통용화폐가 됐다는 것과 중국 내 재생에너지 용량이 화석연료를 넘어서는 등의 새로운 돌파를 부각시켰다.

그런 가운데 경제공작회의에서 경제 문제를 안보 차원에서 강조한 것은 두드러진다. 공급망 단절 속에서 안정적 경제 운영 등을 이뤄내겠다는 거의 전쟁에 임하는 듯 결연한 태도이다. 그는 강렬한 책임의식과 성취의식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대내적으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와 대오를 주문하면서, 중국을 둘러싼 불편하고 적대적 요인들에 대해 어느 때보다 경계를 높였다. 애국주의 교육법을 내년 1월 시행하기로 한 것도 대내 응징력 강화를 위해서다. 자신의 목을 짓누르려는 포위망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안정적 대외환경 구축을 위한 안간힘도 느껴진다.

지난 21일 미국과의 합참의장급 국방분야 회의를 16개월 만에 재개한 것이나 내년 1월 13일로 다가온 대만 총통선거를 관망하며 조용한 여론전에 임하는 것도 다 안정적 대외관계 관리를 위해서이다. 지난 13일 난징대학살 추모식 때는 일본에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 구축"이란 메시지를 주문했다.

한국에 대해선 안정적 대외환경 구축에 방해를 받지 않는 수준에서의 현상유지 태도가 역력하다. 서울의 외교당국은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의 주최국으로 회담 성사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중국의 호응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고 중북 관계가 평탄한 상황도 아니고 북러 접근에 중국이 한발을 넣을 만큼 근시안적이지도 않다. 한미일 연대에 대한 불편함의 표출이라고 할까.

한중은 그동안 쌓여온 시각차와 새로운 해석방식, 금지선을 이해시켜 나가야 하는 쉽지 않은 조율의 시간 속에 있다.

한중 관계의 균열은 달라진 중국의 위상과 변화한 환경에 대한 게으른 대응 탓이기도 했다.
중국은 우리의 중간재를 가공해서 제3국에 수출하던 것에 목을 매던 그런 제조업의 나라가 더 이상 아니다.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생명공학, 우주공학 등에서는 미국을 바짝 따라붙고 있는 기술선진국이다.
수교 30여년 만에 우리보다 11배가 훌쩍 커버린 중국과 우리의 자존을 지키면서 지속가능한 공존의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까. 이익의 균형점을 면밀하게 긴 호흡으로 다시 들여다볼 때다.

jun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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