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자본시장이 열 걸음 나아가려면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1.03 18:32

수정 2024.01.03 18:32

윤경현 증권부장
윤경현 증권부장
국내 투자자들은 지난해 증시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차액결제거래(CFD)로 주가를 조작하는 방법을 비롯해 통정매매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방법,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이 어떻게 무차입 공매도를 하는지 등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차·공·주가 일으킨 사건들로 잠잠할 새가 없었다"는 말이 나왔을까.

수업료도 아주 비싸게 치렀다. 주가조작에 휘말렸던 종목들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대성홀딩스가 1년 동안 90% 넘게 추락한 것을 비롯해 선광, 대한방직, 서울가스, 삼천리 등도 모두 70%를 웃도는 하락세를 기록했다. 이에 따른 손실은 고스란히 개인투자자들의 몫이 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증권사도 곤욕을 치렀다. 투자자와 금융당국의 거센 질책이 뒤따랐고, 관련 사업을 접은 증권사도 있었다.

이제 힘들었던 2023년을 뒤로하고 2024년 새해를 맞았다. 지난 잘못은 바로잡되,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의 발전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뛰어넘어야 한다.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2024년 자본시장 업계 신년인사회를 겸한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이다. 현직 대통령이 증권거래소를 방문한 것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9년 증권·파생상품시장 폐장식에 참석한 이후 무려 14년여 만이다.

증권가에서는 그간 "대통령이 증권거래소를 한 번도 찾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으로 읽힌다"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윤 대통령의 이번 거래소 방문은 자본시장 업계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윤 대통령은 "시장 참여자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공정한 시장을 뒷받침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여야 간 대립이나 세수 부족에 대한 우려 등을 극복해야겠지만) 내년에 도입 예정이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라는 선물도 안겨줬다. 윤 대통령이 '친시장'에 이어 앞으로는 '친자본시장' 행보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내친김에 자본시장 업계의 바람을 담아 윤 대통령에게 (여러 가지가 있으나) 하나만 '소원수리'를 해볼까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대표 격인 법인지급결제 허용이다. 한마디로 기업들이 증권사의 계좌를 통해서도 이체와 송금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적 근거는 2009년에 이미 마련됐지만 은행권의 반대에 부딪혀 개인에 대해서만 지급결제를 허용하고 있다.

"해당 업무가 허용되면 기업이 증권사를 통해 '소액 대량 자금이체(CMS)'를 할 수 있다. 이자를 더 주는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월급통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셈이다."

지난 연말에 만난 한 증권사 임원은 (2시간여의 만남 가운데) 1시간을 넘게 할애해 이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누구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실제로 선진국은 유니버설뱅크 형태로 은행과 증권이 겸업화되고, 대고객 종합자산관리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국내의 반쪽짜리 서비스 역량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도 증권사에 법인지급결제 및 외환업무를 허용함으로써 △대고객 서비스를 다각화하고 △초기기업 대상 모험자본 공급을 확대하며 △은행권의 경쟁을 촉진하는 등 금융산업의 발전과 국민 편익 제고를 기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험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국민의 자산 증식, 민간자금의 모험자본 유입 확대 등 자본시장이 해야 할 일은 차고도 넘친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는 채찍질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한 걸음 아니, 열 걸음을 더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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