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11월, 독일 라이프치히 극장에서 로시니 오페라 '신데렐라'를 공연한 적이 있었다. 이 당시 러시아에서도 공연 요청이 왔고, 다양한 극장에서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주일에 러시아와 독일을 세 번이나 왕복해야 하는 고된 스케줄이었지만, 체력과 정신력이 버텨줄 것이라 믿었고, 지금이 아니면 이런 과감한 시도는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성악가로서의 성공과 인정을 기대하고 내린 이런 결정은 예상했던 것과 달리 피로와 불안감으로 돌아왔다. 공연 시간에 늦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극장으로 향하기 일쑤였고, 진정되지 않은 마음으로 무대에 올라야 했다. 극장 동료들과 가족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응원을 보냈지만 그들도 불안과 걱정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마지막 공연에서는 고속도로 위에서 사고를 당해 발을 동동 구르다 공연 시작 5분 전에야 겨우 극장에 도착하기도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무대를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은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왔고 결국 원하던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고 공연의 막이 내렸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신중하게 선택하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성공을 위해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은 비단 오페라 가수만 겪는 특수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인생의 가장 높은 무대에 서길 바라는 많은 이들이 고르는 선택지이다. 하지만 무대에 서기 위한 고군분투 이외에도 자신을 둘러싼 상황의 한계를 알고 올바른 계획을 세우는 것,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아는 것, 궁극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지금의 선택이 맞는 것인지도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많은 청춘들의 선택에 신중함이 묻어나길 바라며 그들의 발걸음에 응원을 보낸다.
최상호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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