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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발언에 자극... 유럽 자체 안보 강화·국방비 증액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14 05:00

수정 2024.02.14 05:00

올라프 숄츠(오른쪽) 독일 총리와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 1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AP뉴시스
올라프 숄츠(오른쪽) 독일 총리와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 1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AP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유럽 국가들이 안보 재점검에 나서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서 2년 가까이 전쟁이 이어지고 있고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들의 방위비 증액을 요구해온 도널드 트럼프가 11월 미 대선에서 재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자체 안보 강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독일과 프랑스를 잇따라 방문해 동맹 강화 문제를 논의했다.

투스크 총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우리가 러시아보다 군사적으로 약할 이유는 분명히 없다”며 유럽연합(EU)이 스스로 군사 강국이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동 후 “유럽 전체의 안보를 위해 프랑스와 함께 싸울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이날 회동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틀전 다시 나토 동맹국에 방위비 증액 압박을 예고하는 발언을 한 가운데 진행됐다.

트럼프는 지난 10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콘웨이에서 유세장에서 대통령 재임 시절 나토 회원국들이 자국의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로 방위비를 충분히 분담하지 않는 동맹국에 대해 러시아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겠다고 발언했던 사실을 공개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트럼프의 발언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트럼프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채 동맹국을 보호한다는 나토의 약속을 언급하면서 “아무도 유럽의 안보를 갖고 장난을 하거나 거래를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날 프랑스와 독일, 폴란드의 외교장관들도 프랑스 파리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 유럽의 안보 현안을 논의했으며 3개국의 안보 협력을 위한 이른바 ‘바이마르 삼각동맹’을 부활, 강화하는 것을 논의했다.

트럼프 잔소리 통했나? 유럽 국방비 지출 늘려

트럼프의 발언 논란과 상관없이 국방에 더 큰 투자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유럽 국가들이 앞으로 12개월여 기간에 걸쳐 최대한 빨리 방공망을 강화하고 탄약 생산 능력을 키우도록 더 투자를 할 것을 요구했다.

숄츠 독일 총리도 이날 라인메탈의 새 탄약 공장 착공식에 참석해 유럽 국가들이 무기를 대량으로 생산할 것을 촉구했다.

숄츠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언급하면서 “현실은 우리가 더 이상 평화의 시기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다음 세대를 위해 유럽 국가들이 무기를 공동으로 구매하고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EU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약속한 탄약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EU는 오는 3월까지 우크라이나에 포탄 100만발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 기간까지 약속한 분량의 절반을 지원하는데 그칠 것이라고 시인했다.

나토 국가들은 지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름반도를 무력 합병하자 냉전 중단 후 이어온 국방비 지출 감축을 중단하고 2024년까지 각국의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또 지난해 7월에도 GDP의 최소 2%를 국방비로 지출하기로 다시 합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나토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 이상을 국방에 지출하는 것이 의무 사항은 아닌 가운데 이것을 이행하고 있는 회원국은 11개국에 불과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켜본 일부 유럽 국가들은 국방비 지출을 늘려 지난해 폴란드의 국방비는 GDP 대비 3.9%로 3.48%인 미국을 앞질렀다.

GDP의 2%에 못 미치는 국방비 지출로 트럼프의 주 표적이었던 독일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늘려오면서 올해 이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국가들, 트럼프 재집권 대비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에 나토는 회원국들이 국방 예산을 늘릴 것을 재촉해왔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트럼프의 비판이 틀리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폴란드보다 더 부유한 이웃 국가들이 자신들의 안보 비용을 미국 납세자들이 부담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대통령으로써 나도 문제로 삼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나토 사무총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마르크 뤼터 전 네덜란드 총리도 최근 한 경제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방위비 2% 부담을 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 가능성에 대비한 유럽 국가들의 움직임도 달라지기 시작하고 있다.

올해 안에 나토에 가입할 것으로 기대되는 스웨덴은 EU 국가들에게 방위비 지출만 늘릴 것이 아니라 미국과 더 긴밀한 동맹 관계를 유지할 것을 촉구했다.

토비아스 빌스트룀 스웨덴 외무장관은 중국과 대만, 남중국해를 언급하면서 "EU가 미국이 유럽과 우크라이나에 계속 관심을 두기를 원한다면 미국의 전략적 시각에서도 중요한 유사한 이익에 관심을 보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벨기에 루벤 소재 글로벌 관리 연구 센터의 바르트 케레만스 교수는 도이체벨레(DW)와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은 유럽 국가들간 국방과 안보 협력과 통합 강화를 위한 자극제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트럼프 재집권에 따른 미국의 나토 탈퇴 가능성을 줄이고 싶으면 방위비 인상이 필요하다”며 "유럽이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싶다면 세계가 갈수록 불안해지는 가운데 국방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부 유럽 국가들은 벌써부터 트럼프 재당선 시 출범하는 행정부에 참여할 만한 미국의 정치와 경제계 인물 접촉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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