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배당 늘려라, 자사주 태워라" 밸류업도 좋지만..기업들 '경영권 방어' 떤다

김동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2.25 15:16

수정 2024.02.25 15:16

연합뉴스.
연합뉴스.


상장법인 연도별 자사주 소각 규모 추이
연도 소각 규모
2021년 2조5426억원
2022년 3조5740억원
2023년 4조7626억원
2024년 2월 12일까지 3조1751억원
(자료 : 한화투자증권)

[파이낸셜뉴스] 다음달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재계가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자사주 보유량이 많은 그룹 지주사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기업가치 제고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자사주 소각 등 무리한 주주환원 확대가 자칫 행동주의 펀드 등의 경영권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며 긴장하고 있다.

25일 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한국 증시의 저평가 해소 대책을 담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오는 26일 발표된다. 기업 스스로 기업가치를 개선할 수 있도록 세액공제 등 인센티브와 더불어 상법 개정안도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에서는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그에 따른 부작용도 호소하고 있다.

A그룹 지주사 관계자는 "외국인 주주 비중이 높은 기업이 많은데, 외국계 펀드가 주주환원 확대를 명분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며 "발표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무리한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이 현실화되면 미래 투자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그룹 지주사 관계자도 "산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업별 밸류를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첨단산업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높은 경향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업종도 있는데 일괄 비교는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PBR 등 단기 지표보다 중장기 건전성 지표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삼성물산은 행동주의 펀드 5곳이 연합해 배당 증액과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며 내달 정기 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일 전망이다. 삼성물산 측은 "주주제안상 총 주주환원 규모는 1조2364억원으로 2023년뿐 아니라 2024년 회사 잉여현금흐름 100%를 초과하는 금액"이라며 "이런 규모의 현금 유출이 이뤄지면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체 투자재원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재계에선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맞물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를 요구하는 행동주의 투자자 바람이 올해 주총 시즌을 강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는 경영권 방어 수단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가장 대표적 방패는 '포이즌 필'과 '차등의결권'이 꼽힌다. 경제단체들은 지난해 11월 '글로벌 스탠더드 규제 개선 공동 건의집'에서 포이즌 필 도입을 정식 건의하기도 했다.
포이즌 필은 해외 행동주의 펀드 등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할 때 기존 주주에게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도록 권리를 주는 경영권 방어 시스템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일본 밸류업 제도를 벤치마킹했지만,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자본시장 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방어수단이 적다"며 "기업들에게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포이즌 필과 차등의결권이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제3자에 대한 자사주 매각 등 국내에도 이미 사실상 경영권 방어 수단이 있는 만큼, 포이즌 필이 도입되면 오히려 소액주주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hoya0222@fnnews.com 김동호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