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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천년전 바닷물의 작품…구불구불 해안따라 이어지는 절경 [이민부 교수의 지리로그]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4.22 19:04

수정 2024.04.22 20:53

남해, 남해안 800리의 중심
창선·남해도 등 섬 79개로 이뤄져
해안서 시작되는 계단식 논 발달
금산 화강암 절벽은 '풍화 산증인'
남해안 800리의 중심인 경남 남해는 높은 산과 가파른 사면이 해안까지 이어져 예부터 계단식 논이 발달했다. 무려 108계단으로 이뤄진 가천마을 다랭이 논이 특히 유명하다.
남해안 800리의 중심인 경남 남해는 높은 산과 가파른 사면이 해안까지 이어져 예부터 계단식 논이 발달했다. 무려 108계단으로 이뤄진 가천마을 다랭이 논이 특히 유명하다.

경남 남해는 남해안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남해도(302.8㎢)는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남해군은 남해도와 12번째로 큰 창선도(54.2㎢)를 비롯해 3개의 유인도를 포함, 79개의 섬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 창선도는 월경지로서 경상우도 중심인 진주목에 속해 있었다. 남해군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인구는 4만1579명이다. 빙하가 물러간 후에 대략 6000~7000년 전까지 바닷물이 상승하면서 물에 잠겼을 때 급경사와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이 만들어져 섬 전체가 절경을 이룬다. 해안선 길이도 302㎞에 이른다. 일찍이 한려수도의 길목에 위치하면서 해안 일부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포함돼 있다.

기후는 매우 온난하여 난대성 작물이 잘 자란다. 최근에는 그 명성이 많이 약해졌지만 유자, 비자, 치자 등 '3자의 섬'으로 유명했다. 이들은 모두 따뜻한 곳에서 잘 자라는 주요한 약용 및 식용 작물로 애용돼 왔다. 남해도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겨울로, 일찍이 전국의 축구·야구를 비롯한 다양한 스포츠 팀의 겨울 전지훈련장이 되어왔다. 독일에서 귀국한 동포들을 위한 마을도 조성돼 있다. 남해의 휴양지로서 좋은 지리적인 조건을 보여준다. 천연기념물로는 난대성의 상록수림, 왕후박나무, 산닥나무 등이 있다.

지형적으로는 높은 산과 가파른 사면이 해안까지 연결되면서 평지가 별로 많은 편이 아니다. 그로 인해 계단식 논이 해안부터 산지 중앙까지 이어져 발달하고 있다. 가천의 다랭이 논은 108계단으로 전국적인 관광자원으로까지 발전하고 있지만 사실 마을 주민들은 논밭을 일구는 일로 고생이 많았다.

많은 논들은 마늘밭, 유채꽃밭으로 변모되어 있거나 빈 논도 더러 남아 있다. 남해는 밭농사로 고구마 생산도 많았다. 남해는 1980년대까지도 전국에서 고구마가 가장 많이 생산됐다. 오랜 저장과 주정 제조를 위해 고구마를 잘라 말린 '빼때기'로도 유명했다.

남해의 산지를 보면 가장 높은 망운산은 785.9m이고 그 외 호구산이 617.2m,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금산이 681m이다. 이 정도 높이는 해발고도 그대로 산지를 이루므로 산세가 매우 험하다. 산의 높이가 바로 상대비고로 600~700m 된다는 것은 급한 산세를 의미한다. 따라서 농지는 협소하고, 수산자원은 풍부한 편이다.

1861년 전후로 제작된 '동여(東與)'에 표기된 경남 남해
1861년 전후로 제작된 '동여(東與)'에 표기된 경남 남해

남해의 지질과 지형을 살펴보자. 남해도는 지질적으로 중생대 퇴적암(유천층)과 불국사 화강암이 대세를 이룬다. 퇴적암 지대에서는 인근의 진주, 고성과 함께 화석도 나온다. 이들 암석은 비교적 견고해서 풍화해 모래를 잘 만들지 못한다. 남해 해안의 많은 부분들이 비교적 큰 자갈이 있고, 파랑이 잔잔한 만이나 포구에는 그 위로 갯벌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상주와 금산은 대략 6000만년 된 불국사 화강암 지역이다. 설악산, 북한산 등 중부지방의 화강암들은 대보화강암으로 1억5000만년 전 생겨났다. 화강암은 다른 암석에 비해 풍화와 침식이 잘되는 암석이다. 따라서 풍화된 모래들은 빗물과 하천에 의해 바다로 나가서 상주해수욕장의 사빈을 이루고 있다. 사빈 중에서도 석영질이 가장 질겨서 밝은 빛의 백사장을 만든다.

길이가 약 2㎞ 되는 백사장과 뒷면의 송림 방풍림으로 남해안 제일가는 해수욕장이다. 그리고 금산은 풍화와 침식에 견디고 남은 기암절벽의 화강암 산지다. 금산은 아래에서 바라봐도 아름답고, 금산 보리암에서 아래로 상주해수욕장과 남해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장관이다.

물건리 방조어부림(防潮魚府林)도 이미 관광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물건리 해안은 둥근 자갈로 이뤄진 몽돌해안이다. 즉 화강암과 같은 풍화에 약한 암석대가 아니라서 모래가 없다. 물건리 해안 뒤쪽으로 해안의 형태대로 반원형으로 방풍림이 조성돼 있다. 심한 바닷바람을 막고, 고기들의 안식처까지 만들어 주고 있다. 심한 태풍에 상대적으로 잘 견뎌 왔고, 태풍 '매미'에도 잘 견뎠다.

숲의 주요 나무는 느티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이팝나무, 모감주나무와 그 외 말채나무, 가마귀밥여름나무, 누리장나무, 화살나무 등 희귀한 나무들이 1만여그루이며 길이 1.5㎞, 총면적 약 7000평으로 멀리서 바라보는 경관도 좋다.

남해의 유적지는 단연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것이다. 충무공을 기리기 위해 마지막 해전이 벌어졌던 노량 앞바다 노량해협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충렬사(忠烈祠)가 있다. 이 사당 뒤에는 약 6개월간 임시묘로 사용되었던 곳이 가분묘로 남아 있다.

충무공이 전사한 관음포(고현면 차면리)에는 이충무공 전몰유허(戰歿遺墟)가 있다. 여기서 돌아가셨다 하여 이락사(李落祠)라고 하고, 이곳 포구를 이락포(李落浦)라고 불렀다. 충무공은 돌아가신 날 이락사에 잠시 모셔졌다가 충렬사로 옮겨졌고, 약 6개월 후 충청도 아산에 영구히 모셔졌다.

지난 1973년 건설된 남해대교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 바다 위를 지나고 있다.
지난 1973년 건설된 남해대교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 바다 위를 지나고 있다.

남해는 서울에서 멀다. 조선시대 관찬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한양에서 천사십오리라고 거리를 적고 있다.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남해는 한양과 먼 섬으로 제주, 거제, 강진, 흑산도 등과 함께 유배지로도 적임이었다. 이곳으로 유배된 대표적인 선비가 사씨남정기를 쓴 서포 김만중(1637~1692)이다. 그는 숙종이 희빈 장씨를 총애하고 인현왕후를 폐위한 것을 반대해 유배된 상태에서 이를 풍자하여 사씨남정기를 지었다.

남해는 섬으로, 육지와 교량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 바다 위를 건너고 있다. 1973년 건설된 남해대교는 길이 660m의 2차선 교량으로 남해 노량과 하동 노량을 연결하면서 우리나라 연륙교 중에서 현수교로는 처음이며,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창선대교는 서쪽의 강진만(남해도와 창선도 사이의 내해)과 동쪽의 사천만 사이의 좁은 물목 위에 놓여 있다. 조류 흐름에서 볼 때 외해와 연결되는 사천만에서 서쪽의 내해인 강진만으로 밀물이 밀려든다.
이 흐름을 따라 멸치잡이를 위해 국내 유일의 죽방렴(竹防廉)이 만들어져 있다.

남해는 남해안 800리의 중심으로 일점선도(一點仙島)로 표현된다.
남해 사람들은 매우 부지런해 섬이지만 농업적으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남해의 3대 작물로 마늘, 유자, 고사리가 유명하다.

6천년전 바닷물의 작품…구불구불 해안따라 이어지는 절경 [이민부 교수의 지리로그]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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