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외교/통일

한일 '여권 없이 왕래’ 가능할까..국회 비준 난관

김윤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01 14:43

수정 2024.05.01 14:43

외교부서 제기된 '한일판 솅겐조약'
경제계 요구 전달된 결과..정부도 공감
전문가도 "국민 체감, 韓 득이 더 커"
조약 체결하려면 국회 비준 필요한데
巨野, 벌써부터 과거사 언급하며 비판
尹 판단해 국회 비준 생략 가능 의견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6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6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파이낸셜뉴스] 우리나라와 일본이 서로 여권 없이 내국인처럼 출·입국토록 하자는 윤석열 정부 내에서 제기됐다. 내년 한일 수교 60주년에 따른 관계 발전 방안을 강구하던 중 아이디어로 제시된 것인데, 경제계에서도 같은 요구를 했던 만큼 긍정적인 분위기다. 걸림돌은 국회 비준이다. 이달 말 출범하는 22대 국회도 거대야당이 버티고 있는 여소야대라서다.


경제계發 '한일 無여권 왕래'..정부도 긍정적 분위기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지난달 26일 기자들과 만나 “한일 양국 간 출입국 절차를 최대한 간소화해 여권 없이 왕래한다거나 내국인 같은 기준으로 하자는 공감대가 일본에서도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즉각 ‘개인 아이디어’라고 선을 그었지만, 외교부 내부에선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1일 본지와 통화에서 “한일 간 협의는 물론 외교부뿐 아니라 법무부를 비롯해 출입국 관련 부처들이 관련돼 복잡한 사안”이라면서도 “이웃국가들 간에 여권 없이 왕래할 수 있게 하는 건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경제계에선 한일은 물론 아시아 전역의 출입국 절차 간소화를 주장해오고 있다. 아시아 주요 13개 경제단체 대표들은 지난해 7월 아시아 비즈니스 서밋에서 ‘인적 교류 활성화를 위한 출입국 절차 간소화’를 요구했다. 전자 여권을 활용한 절차 간소화와 주요 도시·관광지 무비자 시범지역 지정, 기업인에 비자를 면제하는 파일럿 프로젝트 등이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한일 간 여권 없는 내국인 수준 왕래 아이디어는 경제계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한일 수교 60주년 관계 발전 방안은 정부보다 민간에서 더 활발히 논의되고 있어 일부 아이디어가 정부에 전달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한일 양국 정부가 도출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정책으로 출입국 절차 간소화를 꼽는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통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 체감을 강조하는데 체감은 교류가 가장 크다. 플랫폼으로 웬만한 분야는 활발히 교류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물리적 이동의 불편이 남는다”며 “무비자 입국은 이미 가능하니 여권 없이 갈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일본에 가는 한국인이 더 많아 혜택도 우리나라가 더 많이 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일 사증면제협정에 따라 우리 국민은 일본에 비자 없이 일본에 90일까지 체류할 수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올해 1000만명의 우리 국민이 일본을 방문하고, 230만명 일본인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판 솅겐조약, 여소야대 국회 넘기 어려워

문제는 실현가능성이다. 여권 없는 한일 왕래 아이디어를 제시한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한일판 솅겐조약’이라는 표현을 썼다. 솅겐조약은 유럽에서 조약 가입국 간 국경 검문을 철폐하고 내국인처럼 이동토록 하는 내용인데, 유럽 각국 국내법에 우선하기 위해 의회 비준을 거쳤다. 한일 간에도 조약을 맺게 된다면 적용을 위해선 국회 비준을 얻어야 한다.

이달 말 출범 예정인 22대 국회는 전체 300석 중 더불어민주당을 위시한 야권이 192석을 차지하는 여소야대이다. 민주당은 과거사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만큼 한일판 솅겐조약을 쉽게 수용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벌써부터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3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솅겐조약은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사죄, 실효적 조치 등이 전제된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과거사 문제가 여전히 놓여있고 이 문제를 그동안 논의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일본은 매년 2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주장 명칭)의 날 행사, 3월 교과서 검정, 4월 야스쿠니 춘계 예대제, 5월 외교청서, 7월 방위백서, 8월 야스쿠니 참배 등 독도·과거사 도발을 되풀이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국회 비준 없이도 조약 체결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약 체결 국내절차상 국회 동의는 ‘필요시’라는 조건이 달려서다. 헌법 제60조 1항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조약, 중요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에 대해서만 국회가 동의권을 갖는다는 조항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회 동의가 필요한 조약인지 여부를 판단토록 한 것이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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