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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리더의 오판] 척 보면 알 수 있다는 리더의 안목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09 18:35

수정 2024.05.09 18:35

인재를 한눈에 알아보고
사업 안목도 뛰어나다는
근거없는 자신감 큰착각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피 한 방울로 무려 250여가지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메디컬 키트 '에디슨'을 개발한 스타트업 테라노스는 한때 실리콘밸리의 스타였다. 15달러짜리 키트 하나로 암까지 진단할 수 있는 기술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테라노스는, 특히 의료비가 비싼 나라 미국에서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뜨거운 관심은 곧 창업자인 엘리자베스 홈즈로 향했다. 스탠퍼드대학 재학 시절 19세의 나이에 기술을 개발하고 회사를 창업한 금발의 아름다운 여성 홈즈는 벤처투자업계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창업 후 10년이 지난 2014년 테라노스는 기업가치 약 90억달러(12조2000억원)에 달하는 유니콘이 되었고, 최연소 여성 억만장자가 된 홈즈는 검은 터틀넥을 입고 미디어를 누비며 '여자 스티브 잡스'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하지만 2015년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로 신화는 무너졌다.
테라노스의 기술이 불과 10가지 기초적 질병 진단만 가능하고 상용화도 어려운 수준임이 드러나자 기업가치는 제로 수준으로 폭락했으며, 홈즈는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악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기극보다 더 충격적인 건 홈즈를 뜨겁게 지지하고, 투자와 자문을 아끼지 않았던 미국 사회의 거물들이었다. 전설적 정치외교 전략가인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윌리엄 페리,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샘 넌 전 상원 군사위원장 등이 이사회에 참여했다. 또한 주주명부에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투자자 팀 드레이퍼와 도널드 루커스,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엘리슨 그리고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 등 면면이 화려한 거물들이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대형 슈퍼마켓 세이프웨이, 대형 약국체인 월그린 등은 수억달러의 사업 파트너십을 맺었다.

테라노스의 12년 사기극이 가능했던 이유를 두고 분석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강력한 후광의 힘이 사람들의 눈을 가렸다는 사실이다. 홈즈는 12년 동안 기술을 증명한 적도 없었고, 오히려 내·외부에서 의혹이 수없이 제기됐지만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각 분야 리더들이 그녀의 허술한 변명을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도 받지 못했고, 의학 분야 투자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도 간과했다.

'미모와 스탠퍼드대'의 조합이 세계적 명성을 가진 수많은 리더들의 눈과 귀를 가린 '합리성'을 만든 것이다. 바로 후광효과(Halo effect)다. 하나의 두드러진 특성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요소들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예를 들면 '미모의 일류대학 여대생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독재자인 히틀러가 개와 어린이를 좋아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등이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업적을 이룬 리더들은 대부분 자신의 판단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갖는다. 특히 조직 내 권한과 권력이 클수록 그러한 경향은 강화된다. 그래서 우수한 인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고, 유망 사업을 보는 안목도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매우 균형적인 사고의 산물로 착각한다. 미국 심리학자 에드워드 손다이크는 군대 지휘관들의 병사에 대한 역량평가 결과를 분석한 결과 뚜렷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체격이 좋고 잘생긴 병사는 충성심, 신뢰성, 용맹성, 리더십 항목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고 그렇지 않은 병사는 모든 항목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다트머스대 연구팀은 새로운 자극이 들어왔을 때 뇌가 얼마나 빨리 호감과 비호감을 결정하는지 분석했다. 놀랍게도 부정적인 첫인상은 1000분의 17초의 속도, 즉 0.017초로 반응했고, 긍정적 인상은 1000분의 183초가 걸렸다. 이렇게 찰나의 순간 이미 리더의 무의식은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을 보는 눈이란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으로 뽑을 만한 이유를 만들고, 단지 그것을 합리화하는 '타당성 착각'일 뿐이다. 입사 후 누가 더 훌륭한 성과를 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후광효과는 리더를 '척 보면 알 수 있다'는 심각한 착각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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