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만큼 공동주택이 많아 우연히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단지에서 살게 된다. 주민의 대다수는 집과 직장으로 나뉘어 공동주택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동대표로 봉사하라고 권유하면 사양하기 바쁘다. 그래서 어쩌다가 동대표를 맡게 된 사람들이 책임감에 어쩔 수 없이 계속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공동주택 안에서의 관계들, 다툼들은 매일 무대에 올려지는 연극처럼 벌어진다. 그래서 관리사무소장 이하 직원들은 상식적인 결정을 할 때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한 업무가 되고 있고, 주무관청의 의견을 수시로 묻게 된다. 모든 경우의수를 법이 담을 수는 없기 때문에 때로는 법 해석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나라 법령 체계 속에는 공동주택관리법이 이에 해당된다. 이 법에 근거해 아파트별로 관리규약이 있다. 이 밖에도 중앙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 K-apt 공동주택관리시스템 등의 인프라가 투명하게 제공되고 있어 옛날과 달리 고의성이 있는 부정이 있기는 어렵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만인의 만인에 의한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욕망의 표출이다. 아파트 안도 작은 사회인지라 말이 돌고 돌아 결과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정보를 주고 있는 것인지 요지경이고, 이간질 및 허위정보들이 중첩된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현시하고 싶어하고 영향력을 투사하고 싶어하고 갑질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갑질 문제가 2018년, 2020년, 2023년 등에 불거져 공분을 산 바 있다. 엄밀히 말하면 갑질은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괴롭힌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피해자의 지위와 관계없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관리소장, 관리직원, 동대표에 대한 의심과 공연성을 가진 명예훼손은 피해자에게는 큰 모멸감을 준다. 우리 사회에는 자살로 자신의 감정과 억울함을 알리는 사고들이 자주 보도되는 편이라 극단적인 경우가 우려되기도 한다.
어떤 학자들은 한국인이 자신의 가치를 타인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자신에 대한 절제력보다는 외부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려 노력하는 경향성이 미국인이나 일본인에 비해 크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러한 원인 분석도 중요하겠지만 타인을 지옥으로 만드는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공동주택 관리에 관찰자 입장에 서 있는 대다수에게 있다고 생각된다. 누구나 바쁘다. 그런데 공동주택 관리는 궂은일이니 누군가 해주기를 기대하고 자신은 빛나는 일만 하려고 한다면, 봉사가 과도한 희생만을 의미한다면 한국 사회의 작은 미니어처인 공동주택이라는 공간 내에 품격을 보태기 어렵다. 공동주택이 이러한 양상이라면 이들이 모인 한국 사회도 한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대한 한국인 없이 위대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는 실체들의 광대한 그물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속성에 자기과시 성향이 강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이웃들의 따뜻한 상호작용이 차원 높은 관계 그물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작은 사회에서는 어떤 분들이 묵묵히 일하면서도 비난을 받고 있는지, 내 행위는 타인이 곧 지옥이 되는 상태를 방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살펴보자. 우리는 국가적 성취를 이루어내느라 각자 바빴던 국민들이다. 이제 작은 사회도 살피면서 삶에 미학을 담아낼 시기가 온 것 같다.
이종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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