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정보통신

글로벌 플랫폼에 빗장 건 주요국…한국은 '거꾸로 행보' [길 잃은 IT 입법 下]

김준혁 기자,

임수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22 15:53

수정 2024.05.22 16:00

주요국, 자국 플랫폼 육성+외산 플랫폼 견제
국내는 자국 IT기업 중심의 규제로 논란 양산
"해외기업 규제 장악력 의문…역차별 우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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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주요국들이 자국 위주의 정보기술(IT) 판을 짜고 있는 반면 국내에선 인앱결제강제금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 이후 IT산업과 관련한 정책적 논의가 제자리 걸음이다. 국내 업계는 자국 사업자 중심의 규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역차별 문제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단순 경쟁 논리 기반이 아닌 산업 생태계를 포괄할 수 있는 정책적인 고민이 동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AFP/연합뉴스
AFP/연합뉴스

주요 국가 IT 입법 및 규제·정책 추진 상황
국가 법안·규제·정책 내용
미국 틱톡금지법 중국 숏폼(짧은 영상) 플랫폼 ‘틱톡‘ 강제 매각 법안 입법. 틱톡 모회사인 중국기업 바이트댄스가 270일 안에 틱톡의 미국 사업권을 매각하지 않을 경우 미국 내 서비스를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
유럽연합(EU) 디지털시장법(DMA) 플랫폼 분야별로 시장을 지배하는 사업자를 ‘게이트 키퍼‘로 정하고 각종 의무를 부과. 구글, 메타 등 미국 빅테크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디지털서비스법(DSA) 온라인상 유해 콘텐츠·허위 정보 확산을 막기 위한 법. 엑스(X), 페이스북, 틱톡 등 글로벌 기업이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으로 지정돼 EU의 특별 규제를 받는 형태
디지털네트워크법(DNA) 중장기적인 법안으로 ISP와 CP 간 네트워크 발전을 위해 상생해야 한다는 원칙이 담길 것으로 예상
일본 스마트폰 경쟁 촉진 법안 인앱결제강제금지법과 비슷한 법안으로, 주요 앱마켓 사업자가 다른 기업의 앱스토어 제공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함
라인사태 개인정보 유출을 계기로 일본 총무성이 메신저 라인 운영사 ‘라인야후‘에 모회사와의 자본 관계를 재검토하라는 내용이 포함된 행정지도 지시. 법안이 아니지만, 일본 정부가 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점에서 네이버에 압박으로 작용
중국 2022년 7월 정보보호 규제 강화 목적으로 ‘데이터 역외이전 안전평가방법‘ 규정 신설
자국 내 앱스토어에서 미국 와츠앱과 스레드 앱 삭제. 이외 플랫폼 및 운영체제(OS) 독립도 지속 추진
IT 장벽 높이는 주요국

22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국들은 해당 국가 및 자국 기업의 이해관계에 맞는 법안을 시행하거나 추진 중이다. 국가 안보, 공정, 미래 지속가능성, 독점 방지, 자립 등을 목적으로 한 방안들로, 주로 몸집이 큰 해외 플랫폼 견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국 플랫폼이 없다시피 한 EU는 장악력이 높은 외산 플랫폼을 대상으로 한 강력한 규제 시행을 전 세계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빅테크의 독점력 남용과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마련된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는 지난해 순차적으로 시행됐다. 중장기적으로는 유럽 내 네트워크 인프라 발전 비용을 인터넷제공사업자(ISP)와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분담해야 한다는 내용의 디지털네트워크법(DNA)도 추진한다.

최근 일본 정부의 행정 지도로 촉발된 '라인 사태'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 당국이 개인정보 유출을 이유로 해외 기업의 자본관계까지 재검토하라고 한 것은 사실상 플랫폼 흡수 전략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본은 구글과 애플 등을 대상으로 앱마켓 불공정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스마트폰 경쟁 촉진 법안'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행정부와 의회 모두 국가 안보 보호를 목적으로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의 미국 내 플랫폼 매각을 강제하도록 하는 '틱톡금지법'을 추진 중이다. 이에 중국은 기술 독립을 목적으로 이어온 외산 플랫폼 배척 및 자국 플랫폼 육성 전략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AFP/연합뉴스
韓, 되레 국내기업 규제

반면 국내에선 2021년 인앱결제강제금지법이 세계 최초로 시행된 이후 IT 산업 생태계와 관련한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자국 통신·플랫폼 산업의 진흥보다는 국내 사업자 규제 위주의 현안이 논의되면서 업계는 역차별을 우려하고 있다.

빅테크의 망무임승차가 이 중 하나다. 국내 ISP는 국내 CP는 이미 모두 망이용대가를 지불하고 있지만, 일부 글로벌 빅테크만 이를 내고 있지 않아 역차별 소지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CP는 지급 필요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갈등은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소송전으로도 비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 모두 사실상 이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네트워크 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 간 갈등은 최소화하고 협업이 가능한 정책적 바탕을 깔아주는 게 중요하다"며 "망이용대가가 옳다면 전기통신사업법에서 부가통신사업자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여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네트워크 사업자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을 망설이다 보니 갈등이 강화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구글, 애플, 메타 등 해외 플랫폼을 대상으로 한 국내 규제의 장악력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21년 인앱결제강제금지법 시행 이후 방통위는 구글과 애플의 앱마켓 운영 실태에 대한 조사에 2년 전 착수했지만, 여전히 최종 결과물을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단말기 지원금 규제의 경우에도 국내 통신사와 제조사가 주요 대상인 반면, 애플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국내 플랫폼 업계가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 중인 플랫폼법에 대해 역차별 우려를 쏟아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규제가 국내 사업자 중심으로 구현될 수 있어서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한국은 자국 플랫폼 기업들을 더 규제하거나 독과점을 적용하는 부분들이 있다"며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플랫폼 기업들, 그게 외국자본이든 국내자본이든 통틀어서 접근해야 한다.
동일한 규정과 잣대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jhyuk@fnnews.com 김준혁 임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