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담패설·반복민원·위협행위 등 보험사 악성민원 심각
악성민원인 개념정의·대응방안 마련 시급하다는 지적
블랙컨슈머 리스트화·상담원 피해실태 공론화 필요
일본·호주 사례도 주목
악성민원인 개념정의·대응방안 마련 시급하다는 지적
블랙컨슈머 리스트화·상담원 피해실태 공론화 필요
일본·호주 사례도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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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아줌마”, “결혼은 했나?”, “여자가 말이야~”, “목소리가 좋다, 예쁠 것 같다”, “어제 남자친구와 뭘 했길래 내 말에 집중을 못하냐”.
보험사 여성 콜센터 상담원을 대상으로 한 업무와 무관한 성희롱 발언 사례들이다. 한 민원인은 약 일주일 동안 보험사 콜센터 상담원에게 총 168회 전화를 걸어 업무와 무관한 음담패설을 했고 피해를 입은 상담원은 100여 명에 달했다. 이에 A사는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 및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2조에 따라 고소를 진행했고, 해당 민원인은 징역 8개월 및 성폭력 치료 40시간 이수를 선고받았다.
9일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보험사들에 주로 접수되는 악성민원 유형은 음담패설 외에도 반복민원, 민원조장, 억지주장, 금품요구, 위협행위 등으로 다양했다. 현재 이 같은 민원에 대처하기 위한 문제행동민원소비자 응대 메뉴얼도 마련돼 있으나, 법률적 판단에 따른 강력 대응의 부담과 세부적인 기준 부재 등의 요인으로 실행에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악성민원에 대한 정의와 세부기준 마련 必
손해보험협회 측은 "민원처리 안내문 발송 시, 문제행동 유형과 허위 주장의 경우 업무방해에 해당될 수 있으며 처벌될 수 있음을 적시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 "악성민원을 분류하는 기준이 마련되면 금융회사도 보다 효율적으로 악성민원인에게 대응할 수 있으며, 금융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돌아보게 되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과잉행동을 억제하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민원 평가제도 기준 정비 및 악성민원 통계 수집·관리 필요성도 언급됐다. 감독당국에서 금융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악성민원인에 대한 통계자료를 별도로 관리해 수집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거나 정상민원과 악성민원을 구분해 악성민원은 민원 통계에서 제외하는 등 민원관리시스템을 합리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악성민원 분류기준에 따라 분류된 악성민원에 대해서는 금융회사가 민원관리시스템에 수시로 입력할 수 있도록 하고, 금감원에서도 수시로 분류의 적정성을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악성민원 근절을 위해 △블랙 컨슈머 리스트 데이터베이스(DB)화 △상담원들의 피해 실태 공론화 등을 제시했다. 조혜진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블랙 컨슈머들의 경우 반복적으로 상담원을 괴롭히기 위해 불평을 제기하는 경향이 있어 상담원들이 제대로 된 민원 처리를 할 수 없는 구조"라며 "악성 민원을 제기했던 '요주의 인물'을 리스트화해 예방·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익광고 등의 수단을 활용해 민원인의 문제 제기로 인해 극단적 선택까지 이르는 상담원들의 정신적 피해를 수면 위로 올리는 방안도 거론됐다. 조 교수는 "(블랙 컨슈머들의 악성 민원이) 금융사 직원들과 상담사들의 복지를 넘어 궁극적으로 금융 소비자들을 위한 민원을 처리하는 데에 나쁜 영향을 미쳐 전체적인 복지가 떨어질 수 있다는 부분을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년 전 금감원이 보이스피싱 사기범의 목소리를 녹음한 음성파일인 '그놈 목소리'를 공개해 소비자들의 경각심을 이끌어 냈듯이 '인식의 전환'을 위한 창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 호주 등 적극적 대응 사례 참고해야
일본, 호주 등 금융 선진국에서는 이미 악성민원 근절을 위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일본의 경우 산별노동조합에서 마련한 ‘악질 클레임의 정의와 그 대응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총 8개 악질클레임 유형(장시간 구속형, 반복형, 폭언형, 폭력형, 위협·협박형, 권위형, 점포 외 구속, 인터넷 비방형)별 판단기준과 대응방안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이 주 내용이다. 일례로 장시간 구속형 악질클레임의 경우 일정시간(20분)을 초과해 클레임 대응을 강요하거나 30분이 지나도 민원인을 이해시킬 수 없을 경우 돌아갈 것을 요청하고, 돌아가지 않을 경우 퇴거를 요구하며 경우에 따라 경찰에 연락하도록 하고 있다.
호주 또한 정부기관에 대한 많은 민원을 해결하는 옴부즈만에서 고질민원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특히 △지속적으로 담당직원 또는 직원의 가족을 공격·귀찮게 하거나 스토킹 내지 위협적인 행동을 한 경우 △담당 기관을 방문해 육체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행위를 지속하는 경우 △담당기관의 직원이나 담당 기관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제3자를 위협하거나, 담당 기관을 방문하여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 △무기를 소지하거나 폭탄위협을 하는 경우 △담당 기관을 방문해 직원을 구금하는 행동을 하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 △불법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악성민원인이 담당기관에 더 이상 민원을 제기할 수 없도록 강력하게 조치하고 있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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