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조선, 영조 24년. 내의원 여기저기에 흰 개들이 돌아다녔다. 흰 개들은 내의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궁궐 안을 제집처럼 여기저기 왔다 갔다 했다.
개들은 궁을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에 똥을 쌌다. 그런데 그 똥을 잡일을 하는 궁녀들이 치우는 것이 아니라 의관들이 집어 들었다.
어느 날 영조가 흰 개들이 전정(殿庭)까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이 개들은 뭐냐? 어찌 개들이 궁궐에 있는 것이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뒤따르던 내관이 “내의원에서 데려다 키우는 개들입니다.”라고 답했다.
영조가 다시 묻기를 “어찌 내의원에서 개를 키운다는 말이냐?”하고 되물었다. 내관은 “개똥을 약으로 사용하기 위함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영조는 “사분산을 말하는 것이냐? 그런데 사분산에는 흑구(黑狗)의 똥을 약으로 쓰는 것이 아니더냐? 그럼 의관들은 지금까지 백구(白狗)의 똥을 속여서 사용했다는 말이냐?”라고 하면서 어이가 없어 했다.
영조는 당시 사분산(四糞散)을 동궁의 두진이나 열병에도 수차례 사용해 왔기 때문에 그 재료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당시에도 사분산은 신하들조차 선뜻 권하기 민망한 처방이었다. 처방이름에도 분(糞, 똥)자가 들어가서 부르기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바로 이전의 선조 때 만금산(萬金散)으로 개명한 바가 있었다.
영조는 전에 마진(痲疹)으로 인해서 정신이 혼몽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의관 유상이 사분산을 만들어서 밖에 대령하고서는 “만금산을 써야 합니다.”라고 했다.
영조는 “만금산의 재료가 뭐냐?”하고 묻자, 유상은 “백출 등이 들어갑니다.”라고 했다. 만금산의 재료가 개똥이라고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자 영조가 웃으면서 “나무도 똥을 싸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영조는 의관의 권유에도 사분산을 복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분산(四糞散)은 네 가지 종류의 똥을 모은 처방이다. <동의보감>에는 ‘사분산은 각각 어린 남자아이, 검은색 고양이, 검은색 개 그리고 검은색 돼지의 똥을 취해서 말린 다음에 가루로 태워서 한 번에 한 돈씩 밀수(蜜水)로 조화해서 복용한다.’라고 되어 있다.
두진과 열병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활용하였다. 모두 검은색을 취한 것은 검은색이 흰색에 비해서 음적인 기운과 진정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음 날 영성군 박문수가 입궐했다. 영조는 박문수에게 “영성군은 내의원에서 백구를 키우는 것을 아시오?”하고 물었다. 별다른 대답이 없자 다시 물었다. “약으로 쓰려면 흑구를 키워야 하는 것이 아니오?”라고 했다.
그러자 박문수는 “내의원에서 백구가 있는 것은 개똥을 약으로 사용하기 위함이 맞습니다. 신 또한 사분산의 재료로 흑구의 똥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똥을 쓸 때는 흑백의 구분이 없으니 어찌 똥의 품질에 좋고 나쁨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박문수는 의관이 아니기 때문에 단지 자신의 소신껏 말한 것뿐이다. 사실 박문수의 의견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개똥을 약으로 사용함에는 원래 백구의 똥을 약용했다. <동의보감>에는 ‘백구시(白狗屎)는 정창(丁瘡)과 누창(瘻瘡)의 모든 독을 주로 치료한다.’고 했다. 백구시는 바로 흰 개의 똥이다. 정창과 누창은 일종의 종기와 같은 질환이다.
그러나 영조는 궁궐에 개가 돌아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어느 날 예조판서 이주진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이주진은 “백구는 1년 내내 본원에서 키우고 있고 흑구는 사분산에 들어가는 똥을 얻고자 음력 9월부터 대령하였다가 섣달(음력 12월)이 지난 뒤에 도로 내보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영조는 “궁궐에 백구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지 못하겠소. 백구는 사분산과도 무관하니 치우도록 하시오.”라고 하였다.
이주진이 흑구는 필요하다면서 약간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영조는 흑구 또한 때가 되면 내보내도록 했다. 그러면서 이어 하교하기를, “앞으로 궁궐에서 개를 기르는 일이 있으면 모두 금지하도록 하시오.”라고 명하였다.
사실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는 개를 키우고 있었다. 그 개는 흑구도 아니고 백구도 아니었다. 사도세자는 어디서 구했는지 몸에 큰 점이 박힌 서양에서 건너온 개를 애지중지 길렀다. 영조는 이 또한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후로 궁에서는 더 이상 흑구 백구를 막론하고 어떠한 개도 볼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영조 31년, 영조는 혁파(革罷)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사분산의 사용 또한 영원히 금하는 어명을 내렸다. 이후 궁궐에서 개뿐만 아니라 개똥을 약으로 사용하는 처방까지 사라졌다.
* 제목의 ○○은 ‘개똥’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승정원일기> ○ 영조 24년 11월 11일. 文秀曰, 內局之有白狗, 蓋以用白狗糞, 而內局捧白狗之際, 不無貢人之弊. 且以四糞散, 亦養黑狗, 則用糞之際, 非但黑白之混雜, 糞之精麤, 亦豈有內外之別耶? 上曰, 四糞散, 先朝以拘忌, 改名萬金散. 予於痘時昏涔中, 聞柳瑺之言, 當用萬金散云而不用矣. 其後萬金散材料, 問於柳瑺, 則對以白朮等藥, 予笑謂曰木亦放糞乎? 其時已知內局之待令四糞散矣. 周鎭曰, 白狗, 勿論四時, 連置院中, 黑狗, 以四糞散所入, 自九月待令, 過臘後還爲出送矣。上曰, 前見白狗出入於殿庭, 問之則內局待令之狗云矣. 此與四糞散之狗有異, 去之, 可也。周鎭曰, 四糞散材料, 待令之黑狗, 臘節過後, 當出送矣. 上曰, 唯. 仍敎曰, 此外或有禁中畜狗之事, 一倂禁之. (박문수가 아뢰기를, “내국에 흰 개가 있는 것은 흰 개를 사용하기 위해서인데, 내국에서 흰 개를 거두어들일 때 공인의 폐단이 없지 않습니다. 또 사분산으로서 흑개를 길렀으니, 똥을 쓸 때 흑백이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똥의 품질이 좋고 나쁨이 또한 어찌 내외의 구별이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분산은 선조 때 구기로 만금산으로 개명하였다. 내가 두마로 혼몽한 가운데 유상의 말을 들으니, 만금산을 써야 한다고 했으나 쓰지 않았다. 그 뒤 만금산의 재료를 유상에게 물으니 백출 등의 약이라고 대답하니 내가 웃으면서 나무도 똥을 싸는가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이미 내국에서 사분산을 대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했다. 이주진이 아뢰기를, “백구는 사시를 막론하고 연달아 본원에 보관해 두었고, 흑구는 사분산에 들어가는 것으로 9월부터 대령하였다가 섣달이 지난 뒤에 도로 내보냈습니다.”라고 하자, 상이 이르기를, “전에 백구가 전정에 출입한 것을 보고 물으니, 내국이 대령한 개라고 하였다. 이는 사분산의 개와 차이가 있으니 제거하는 것이 가하다.”라고 하였다. 이주진이 아뢰기를, “사분산의 재료로 흑구를 대령하는 것은 섣달이 지난 연후에야 마땅히 내보낼 수 있습니다.”라고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이어 하교하기를, “이 밖에 혹 궁궐에 개를 기르는 일이 있으면 모두 금지하라.”고 하였다. )
○ 영조 31년 4월 28일. 藥房提調李益炡曰, 日昨筵中, 以四糞散事, 旣承下敎矣, 姑爲減去乎, 永爲革罷乎? 上曰, 永爲革罷事, 分付. (약방 제조 이익정이 아뢰기를, “일전에 연석에서 사분산의 일을 이미 하교를 받들었습니다. 우선 줄입니까, 영원히 혁파합니까?”라고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영원히 혁파하도록 분부하라.”고 하였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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