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심는 헛개나무는 아까시나무보다 벌꿀 생산량이 9배 많다.”
권재한 농촌진흥청장은 지난 21일 경북 칠곡군 꿀벌나라 테마공원에서 열린 ‘민관합동 꿀샘식물 식재행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칠곡군은 전국 유일의 양봉산업특구다. 독일인 구걸근 신부가 1907년 칠곡에서 처음 서양꿀벌을 도입해 근대 양봉의 출발지가 됐다. 양봉인과 꿀벌에게 뜻깊은 지역에서 꿀벌의 먹이가 되는 꿀샘식물(밀원식물)을 심기 위해 나선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이날 칠곡군에서 ‘민관합동 꿀샘식물 식재행사’를 주최했다. 꿀벌 보호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헛개나무꿀 생산을 장려하고, 헛개나무꿀과 양봉산업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권 청장을 비롯해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 김재욱 칠곡군수, 박근호 양봉협회장, 이수근 한봉협회장, 김용래 양봉농협조합장, 송인택 꿀벌생태보호협회 이사장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권 청장은 인사말에서 “최근 몇 년간 꿀벌 폐사 이슈가 있었다. 꿀샘식물이 줄어들며 양봉농가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농진청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꿀벌 품종 육성, GPS 기반 개화 시기 예측, 월동 시스템 개발, 등검은말벌 방제 등 국내 양봉산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칠곡군에 심을 꿀샘식물로 헛개나무를 선택했다. 아까시나무가 노령화되며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헛개나무의 벌꿀 생산량은 1만m²당 180㎏으로, 10년생 아까시나무보다 약 9배 더 많은 꿀을 얻을 수 있다. 헛개나무꿀은 전립선 비대증 개선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헛개 열매는 숙취 해소와 간 기능 개선에 활용되는 한약재로도 쓰일 수 있어, 양봉농가는 이중 소득을 기대할 수 있다. 칠곡군은 헛개나무 단지를 조성해 헛개나무꿀을 생산하고 이를 특산물로 육성하고 있다.
권해연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특용자원연구과장은 “기후 조건이 좋고 충분한 꿀벌 숫자가 받쳐주면 1㏊당 300㎏까지 꿀을 수확할 수 있는, 최상급 잠재력을 가진 나무”라고 설명했다. 최장기 한국한의학연구원 센터장은 “시장 개방이 가속화되면서 국산 벌꿀의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다. 국내산 꿀에 대한 고부가가치 기능성 발굴이 필요하다”며 “헛개나무꿀이 고령화로 인한 전립선 비대증에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헛개나무는 6월에 꽃이 핀다. 밀원식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까시나무가 5월 이후 꽃이 지더라도, 꿀벌들은 6월에도 꿀을 채집할 수 있다. 정 의원은 “꿀벌이 위기다. 기후 변화로 인해 개화 시기가 비슷한 시기로 몰리는 게 문제”라며 “밀원수를 다양화해야 양봉농가도 소득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협회장은 “국내 꿀 생산량의 70%가 아까시나무에 의존한다. 개화 시기가 다양한 꿀샘식물을 전국에 식재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꿀샘식물 연구 성과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꿀의 건강기능성이 입증되면 프리미엄 식품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양봉산업법 시행규칙은 밀원식물의 범위로 목본식물 25종, 초본식물 15종을 명시하고 있다. 2023년 국산 밤꿀의 항바이러스 효과를 연구한 결과, 밤꿀이 선천적인 면역력을 높여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진청을 비롯한 다부처 공동 연구기관은 ‘기상이변 대응 새로운 밀원수종 개발로 꿀벌 보호 및 생태계 보전’ 연구를 수행 중이다. 이 사업은 2023년부터 2030년까지 총 8년간 484억4000만원을 투입한다.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은 161억원을 들여 꿀벌 종합관리를 통한 꿀벌 강건성 증진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 산림청, 농림축산검역본부, 환경부, 기상청 등도 각각 밀원식물과 꿀벌에 대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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