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

[단독] "휴가 노렸냐" 성추행 피해장병 매도한 간부..軍, 6개월째 방치

이해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7.17 06:00

수정 2025.07.17 06:00

성폭력 2차 가해에 무방비 노출된 軍장병들
"휴가 노렸냐" 발언에도 피해자와 '한 지붕 생활'
훈령상 '2차 가해자 분리 조치 의무' 없어
'접촉 최소화 조치' 했다더니.."바뀐 것 없다"
부승찬 의원 "훈령 개정 적극 검토하겠다"
이준석 기자
이준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강원도 화천군 한 부대 내에서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장병들에 대해 "휴가 노리고 신고했나"는 발언을 하는 등 2차 피해를 입힌 간부들이 피해 장병들과 수개월간 함께 생활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 장병들은 간부들에 의한 2차 피해를 호소하며 분리 조치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지속적 2차 피해에 무방비 노출됐다.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 제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군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대 중대장 A씨와 행정보급관 B씨의 성폭력 2차 가해를 호소하며 분리 조치를 요구했으나 군은 징계 및 분리 조치를 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부대관리 훈령 제250조 3항에 따라 2차 가해자에 대한 분리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4개월째 가해자 방치한 軍간부.."누구도 믿지 못하게 돼"

사건은 2024년 8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상병이었던 문씨는 후임 6명을 향해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지속하는 등 수차례 성추행과 성희롱을 가했다. 피해자 일부는 9월 소대결산에서 피해 사실을 보고했지만 A씨는 문씨에 대해 구두 경고, 작전지 생활관 재편성 등 외에는 처벌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이후 문씨가 "억울하다", "후임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군 내부에서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1303(국방헬프콜)에 신고를 하지 못했다. 분대장을 통해 "중대가 사건사고가 많아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면 대대장이 '중대를 해체시켜 버리겠다'고 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피해자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수치스러웠지만 아무런 처벌과 징계가 없이 끝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든 게 두렵고 무서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A·B씨가 아무런 조치를 내리지 않자 "용사들의 손을 잡고 공감해 줘야 할 간부들이 사건을 무마시키고 덮으려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고 역함을 느꼈다"며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됐다"고 전했다.

5개월이 흐른 1월, 피해자 C씨는 신고를 결심했다. 피해자 C씨와 다른 피해자 D씨는 1303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고 문씨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2차 가해자로 지목한 A·B씨와 부대 생활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A씨는 피해자들을 향해 "휴가를 노리고 신고한 것 아니냐"는 발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접촉 최소화 조치'했다더니.."바뀐 것 없다"

군은 A·B씨에 대한 조사도 했지만 결과는 불만족스러웠다. 행정보급관인 B씨는 '지휘보고 관계에 없다'는 이유로 2차 가해자에서 제외됐고, 중대장인 A씨는 '2차 가해 혐의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적절한 지휘조치 미흡(성실의무위반)'으로 군단 법무실로 이첩해 추가 조사 중이지만 피해자들의 군 생활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지금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군은 A·B씨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8~9월 사이 개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피해자 중 1명은 8월 전역 예정으로, 전역 후 징계 여부가 결정되는 셈이다.

부 의원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군은 3월 두 간부에 대해 피해자들과 '접촉을 최소화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혔지만 피해자들의 일상은 바뀌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신고가 접수된 1월부터 7월까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접촉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히려 피해자 중 1명이 '더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대대로 전출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건에 대한 허술한 조치들이 수 차례 발견됐다. 취재 과정에서 제보자는 사건을 제보한 6월까지 '문씨에 대한 징계 여부'를 피해자들이 알지 못한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가해자 문씨는 3월 25일 '휴가단축 5일' 징계처분이 의결된 상황이었다. 군은 피해자에 대해 통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인사담당자가 안내 의무를 인지하지 못해 피해자에 대한 신청 안내가 6월 26일 이뤄졌고, 최종 피해자에 대해서는 6월 30일 통지됐다"고 설명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 징계 사실을 통지한 것이다.

부대관리 훈령상 '2차 가해자 분리 조치' 관련 규정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부 의원은 “2차 피해에 대한 분리 조치에 대한 규정이 없어 피해자들이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명확한 기준을 포함한 부대관리 훈령 개정 방안을 적극 검토토록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haeram@fnnews.com 이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