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사례로 프랑스 파리의 '15분 도시' 프로젝트가 있다. 시민이 병원, 학교, 공원, 상점 등 일상에 필요한 기능을 집 근처 15분 거리에서 누릴 수 있도록 도시를 재편한 이 전략은 공간 효율을 넘어 회복탄력성과 감성적 도시 경험까지 고려한 통합적 접근이다. 바르셀로나의 '슈퍼블록', 코펜하겐의 '자전거 고속도로' 등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사람 중심 디자인의 세계적 흐름을 보여준다.
서울 역시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동행매력특별시, 서울'이라는 비전을 내세우고 있다. 도시의 외관을 바꾸는 것을 넘어 디자인을 통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 핵심 가치다. 공공건축과 가로환경, 교통체계, 복지시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 중심의 디자인 원칙이 적용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시민'을 향한 배려가 있다.
서울디자인재단은 그 일환으로 '유니버설디자인 컨설턴트 사업'을 추진 중이다. 공공시설 환경 개선, 저출산·고령화와 재난 대응 등 사회적 과제를 중심으로 디자인 전문가를 매칭해 사용자 중심의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다.
예컨대 금천구 참새작은도서관은 노후 공간을 전 세대가 함께 사용하는 열린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영·유아부터 어르신, 장애인 등 모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과 안전성을 높였다. 도봉구 방학3동 '햇살길'은 주민 주도로 노후 담장을 개선해 쓰레기 투기 문제를 해결하고 마을 공동체를 회복한 사례다. 광장시장 공중화장실 정비, 전북 진안군 노인 커뮤니티 조성 등 도심과 농촌을 가리지 않고 사람 중심의 디자인이 실천되고 있다.
올 10월 열리는 '서울디자인위크'는 이러한 철학을 집약해 보여주는 대표 행사다. 'DDP디자인페어'는 청년 디자이너와 100여개 국내외 브랜드를 연결하는 산학협력의 장이다.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 디자이너와 창의적 돌파구가 필요한 기업 양측에 실질적인 '디자인 동행'의 기회를 제공하며 디자인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서울디자인창업센터, 서울새활용플라자 등은 창의 인재와 산업을 연결해 도시 전반의 혁신 기반을 다지고 있다. '중소기업 산업디자인 개발 지원사업'에서는 AI·소프트웨어부터 소비재 브랜드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40개 참여컨소시엄을 구성해 1대1 진단과 코디네이팅, 멘토링, 역량 강화 교육 등을 제공한다. 디자인으로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시장 확대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올 10월 서울디자인위크 기간에는 참여 기업의 성과 발표와 언론 홍보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후속 사업과도 연계할 계획이다.
DDP는 '전문가 중심 공간'이라는 인식을 넘어,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놀 수 있는 디자인 놀이터로 변화 중이다. 시민 참여형 거리공연 'DDPlay 버스킹' 참가자를 모집해 일상 속 예술과 문화를 향유하는 열린 무대를 마련한다. 가을과 겨울에만 열리던 미디어아트 축제 '서울라이트 DDP'는 여름 시즌에도 개최된다. 성곽과 공원 일대 빛의 결을 테마로 대규모 미디어아트가 펼쳐지고 '디자인 홀리데이' 등 DDP 실내외 곳곳에서 다양한 전시와 디자인 체험이 시민을 맞이한다.
서울은 지금 디자인을 통해 도시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있다. 그 중심에는 시민이 있다.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공간을 바꾸고, 관계를 회복하며,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가는 '생활 디자이너'다. 디자인은 사람을 향한 배려이자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따뜻한 혁신이다. 그리고 그 혁신은 언제나 사람에서 시작된다.
차강희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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