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한해 스토킹 등 여성피해자 555명… '제도 실패'가 부른 비극

장유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05 19:03

수정 2025.08.05 19:03

'관계성 범죄' 신고도 무용지물
접근금지 조치 실효성 떨어져
최근 전국에서 스토킹과 교제살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관계성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해마다 최소 수백명의 여성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여성계는 반복되는 여성 살해는 명백한 국가와 제도의 실패라며 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5일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181명, 살인미수 등으로 생존한 여성은 374명으로 집계됐다. 한 해 동안 555명의 여성이 관계성 범죄의 피해자가 된 셈이다.

하지만 이는 공식 통계가 부재해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자체 집계한 수치로, 보도되지 않는 사건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계성 범죄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형성된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범죄를 뜻한다. 연인 간 스토킹, 교제폭력, 가정폭력 등이 대표적이다. 가까운 관계에서 벌어지는 만큼 재범 위험이 크고,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으면 범행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는 게 특징이다.

실제 최근 전국에서 잇따라 발생한 사건들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달 26일 경기 의정부시에서는 노인보호센터에서 근무하던 5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졌다. 피해자는 가해자를 스토킹으로 세 차례나 경찰에 신고한 이력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어 29일 대전에선 30대 여성이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했고, 31일에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50대 여성이 함께 살던 남성 흉기에 찔려 숨졌다. 이들 모두 범행 이전 피의자를 경찰에 신고한 이력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반복적인 위험 신호가 있었지만,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미흡한 실정이다. 경찰은 스토킹 신고가 접수되면 직권으로 긴급응급조치(주거지 100m 이내·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를 내릴 수 있고, 법원에 1∼4호의 잠정조치(서면 경고, 100m 이내·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 구금 등)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법원 결정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조치 자체도 형사처벌이 아닌 임시 대응에 그치는 탓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여성학 박사)은 "현재의 잠정조치는 경찰과 검찰 단계를 모두 거쳐야 하는데, '지속'과 '반복'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고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다 보니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더 큰 문제는 잠정조치가 내려진다고 하더라도 가해자가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여성계는 반복되는 여성 살해를 막기 위해 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단체들은 "제대로 모니터링조차 되지 않는 현행 피해자 보호조치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welcome@fnnews.com 장유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