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경기 가평군의 한 캠핑장에서 시간당 70㎜가 넘는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했다. 토사가 캠핑장을 덮쳤고, 고등학생 A군은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같은 날, 동생과 어머니는 닷새와 열하루 뒤 각각 숨진 채 발견됐다. 일가족 4명 중 A군만이 살아남았다.
올여름 폭우는 유난히 잦고 매섭다.
이런 상황은 낯설지 않다. 2011년 춘천 산사태에선 새벽 4시 펜션 투숙객 13명이 토사에 휩쓸려 숨졌다. 2002년 우면산 산사태에서도 대피방송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많은 주민이 끝내 집을 떠나지 않았다. 2020년 구례의 경우 가축을 챙기느라 대피가 지연돼 피해가 컸다.
반면 신속한 대피로 피해를 막은 사례도 있다. 2022년 태풍 '힌남노' 때 포항 일부 마을은 사전 대피령과 마을 이장의 차량 지원으로 인명 피해를 막았다. 2023년 전남 해남군은 장마 전 배수펌프와 하천 준설을 마쳐 기록적 폭우에도 침수가 없었다. 경북 울진군은 매년 방재훈련과 대피경로 점검으로 재난대응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전 조치는 실제 상황에서 인명 피해를 줄이는 핵심 요소다. 경고가 행동으로 이어질 때 참사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불어난 계곡 옆에서 사진을 찍거나, 침수된 도로를 억지로 건너는 운전자가 여전히 있다. 장마철 산행이나 홍수주의보를 무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제방을 높이고 배수시설을 보강해도 이런 위험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피해를 줄이기 어렵다.
가평 사고 때도 대피 권고가 있었지만, 현장을 벗어나지 않은 이들이 상당수로 알려졌다. 피해자 개인의 잘못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험 경고를 '설마'가 아닌 '반드시'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도 단순 시설보강을 넘어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폭우 피해 이후 "특별재난지역을 조속히 지정해 신속 복구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관계 부처와 지방정부에는 '선조치 후보고' 원칙을 적용해 적극 대응할 것을 주문했고, 사망사고가 관리 미흡 등 인재인지 유형별로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피해지역 지원과 제도개선을 병행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이는 단순히 단기적 '땜질식' 복구가 아니라 향후 재난대응 방향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현장 초기대응 능력을 끌어올리고, 경고체계와 대피절차를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결국 정부 시스템 전반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경고가 내려졌을 때 이를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회적 습관을 만드는 일이다. 이는 법과 제도, 교육, 지역 공동체의 문화가 함께 작동해야 가능한 변화다. 위험을 알리는 경보만으로는 부족하다. 주민이 경보의 의미를 이해하고, 훈련을 통해 몸이 먼저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와 직장, 마을 단위에서 대피절차를 반복 숙지하는 일상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휴가철이라면 더욱 절실하다. 계곡과 해변, 산 등 휴양지를 찾는 발걸음이 늘어나는 시기이지만 폭우와 급류, 산사태 위험이 커지는 때와 겹친다. 낯선 지방에서는 위험신호를 놓치기 쉽다.
가평에서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한 학생의 가슴 아픈 사연은 재난이 닥쳤을 때 무엇을 먼저 지켜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오래 준비한 일정이라 해도 가족과 동행의 안전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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