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98점짜리 건설 현장

전민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12 19:04

수정 2025.08.12 20:03

전민경 건설부동산부
전민경 건설부동산부

"시험에서 100점을 받기 위해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주어진 숙제를 모두 마쳤어요. 추가로 돈을 들여 문제집도 더 샀고 반복되는 실수를 줄이려 오답노트까지 만들었죠. 잠도 줄여가며 꼼꼼히 준비했어요. 그런데 2점짜리 문제 하나를 틀려 98점을 받았어요."

고등학생 자녀가 이와 같이 말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한 문제 틀렸다고 혼을 내기보다는 격려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위축된 모습보다는 다음 시험을 위해 또다시 노력하는 자녀의 모습을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자녀의 평소 행실과 학업에 대한 태도에 따라 채찍이 나올지, 당근이 나올지는 달라질 수 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안전관리자들은 지금 연락도 안 돼요. 회사 전체가 안전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데…." "안전관리 비용도 법으로 정해진 것보다 추가로 투입하고 있지만…참 쉽지가 않네요." 건설업 종사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모두가 말끝을 흐리게 되는 요즘이다. 건설사들은 '무사고 현장'을 위해 이런저런 대책을 분주히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무사고 기업'이 될 수 있다고 100% 장담할 수는 없다. 100점짜리 현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내 건설현장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A씨는 "헬멧을 쓰니 마니 등 현장에서는 각종 실랑이가 오간다"며 "다국적 공사장에서는 문화 차이도 상당하다. A를 만들라는 지시를 정확히 따르는 문화도 있지만, A-를 만들어 내거나 A와 비슷한 B를 만들면 된다고 여기는 문화도 있다"고 전했다.

처벌에 초점을 맞춘 중대재해처벌법이 사고 예방에 큰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난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산업재해자 수가 뚜렷하게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징벌적 대응만 반복된다면, 기업은 처벌 회피 중심의 방어적 안전관리에만 치중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특히 투명하게 공개돼야 할 안전 관련 정보를 치밀하게 숨기려 하거나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 위험감지 보고가 제때 진행되지 않는다면 현장의 위험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1년 동안 100점을 맞기 위해 달려왔는데도 문제를 하나 틀리는 순간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며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으쌰으쌰해서 사고를 예방하면 좋겠는데 지금은 하루하루 법적 문제를 피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위축만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기업이 '안전 불감증'으로 관리를 소홀히 했다면 변명의 여지없이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100점짜리 건설현장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예방에 초점을 맞춘 안전문화를 구축할 수 있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ming@fnnews.com 전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