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컴퓨터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70년대 초 입시에 사용되면서다. 1970학년도 서울 중학교 무시험 배정에 컴퓨터를 이용했다. 객관식 답안지 표기와 채점에 쓰이는 광학마크인식(OMR) 카드도 컴퓨터를 활용한 것이다. 이어서 대입 예비고사 채점도 옛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컴퓨터 시스템으로 했다.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처음 도입된 것은 그보다 전인 1967년이다.
그러나 초기의 컴퓨터는 매우 비싸고 덩치가 커서 일반인이 다룰 수 없는 물건이었다. 미국에서는 컴퓨터 대중화를 위해 프로세서를 소형화한 마이크로컴퓨터를 만들어 냈다. 1975년 출시된 인텔 8080 8비트 중앙처리장치(CPU)를 사용한 알테어 8800이 그 효시다. 1976년 스티브 잡스 등이 설립한 애플이 첫 시제품을 거쳐 선보인 마이크로컴퓨터 애플 II는 10만대 넘게 팔릴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1981년 IBM이 IBM-PC를 출시한 다음부터 마이크로컴퓨터는 퍼스널컴퓨터(PC·개인용 컴퓨터)로 불리었다.
주지하다시피 국내 최초의 PC는 1980년 삼보컴퓨터에서 만든 SE-8001이다. 시기적으로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타대에서 통계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고 이용태 박사(1932~2025)가 직원 7명과 자본금 1000만원으로 설립한 기업이 삼보컴퓨터다. 8001은 1980년에 만든 첫 컴퓨터라는 의미다. 그러나 당시 SE-8001 컴퓨터 가격은 요즘 돈으로 억대라고 할 1000만원이 넘어 기업의 회계관리용으로 사용됐다. 고인은 인터넷 서비스 회사 두루넷을 설립했는데, 그 기업의 부실 탓에 삼보는 부도가 났다. 삼보컴퓨터는 현재 컴퓨터 관련 서비스업체로 남아 명맥은 끊어지지 않았다.
삼보에 이어서 대기업들도 PC를 출시했다. 삼성반도체통신이 1983년 내놓은 8비트 'SPC-1000'과 금성사의 '금성 패미콤', 한국상역의 '스포트라이트 1', 효성컴퓨터의 '하이콤 8' 등이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1983년을 '정보산업의 해'로 정해 컴퓨터 5000대를 학교에 납품할 계획을 세우고는 이들 민간기업 5곳에 개발을 요청했다.
1985년 삼보컴퓨터는 IBM PC AT 호환기종 '트라이젬 286'을 출시했다. 국내 최초의 286 컴퓨터였다. '286 컴퓨터'란 80286이라는 인텔의 CPU 모델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뒤를 이어 386, 486, 펜티엄급으로 성능이 향상된 컴퓨터가 나왔다. 처음 발매된 삼보의 286 컴퓨터 한 대 가격이 승용차보다 비싼 500만원이나 됐다. 포항공대에서는 교수 초빙공고에 '286 PC 한 대를 준다'고 광고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1979년 광고에서 휼렛팩커드와 손잡고 35대를 국내에 보급했다고 알렸다. 삼보컴퓨터가 나오기 전이다. 또 같은 해 7월 25일자 신문광고에서는 "컴퓨터 국산화를 앞당겨 실현했다"며 'C-500' 모델을 소개했다(사진). 광고에서는 "국내 최초로 자체 기술진에 의해 최대 512대 터미널을 동시 연결할 수 있는 온라인용 컴퓨터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휼렛팩커드와 제휴하면서 기술을 습득한 삼성전자가 미국 컴퓨터 주류기업이던 애플이나 IBM과 다른 길을 걸으며 독자적으로 컴퓨터를 개발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이 기술이 나중에 SPC-1000 개발로 이어지고, 컴퓨터 시장을 장악한 원천이 됐을 것이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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