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전문가칼럼

[마동훈의 위험한 생각] 10개의 서울대 vs 10배의 경쟁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17 18:30

수정 2025.08.17 19:33

서울대 10개 실효성 의문
정치 셈법에서 자유로운
국가 산업·대학정책 필요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
국가는 다양한 공동체, 산업, 이해집단, 그리고 국민의 거대 총합체다. 그래서 국정 방향의 설정은 늘 어려운 일이지만, 가능한 한 간결하고 선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국가라는 거함이 오랜 항해 끝에 도착할 목적지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알지 못하면 배에 올라탄 구성원 간의 통합도, 안정과 성장도 기대하기 힘들다.

지난주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는 국가 새 선장 선출 이후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정부가 비로소 국정의 5년간 항해 방향 청사진을 숙고해 제시했다는 점에서 모두의 관심거리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으로의 항해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한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국정기획의 주요 요소의 디테일에 심각한 모순이 있고, 이로 인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디테일이 제시되지 않으면, 국민은 새 선장의 항해 방향에 의문을 갖고 동요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의 정형화된 인식체계, 소위 프레임으로 발전하면 정권 내내 되돌이표 없는 부담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 경험했다.

인류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로 전개되는 대변환 시대의 중심 화두는 단연 21세기형 과학기술이다. 그래서 이번 국정기획에도 과학기술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인공지능(AI) 3대 강국으로의 도약을 통해 세계를 이끄는 혁신경제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담겨 있다. 미래 과학기술·산업·경제의 견인을 위해 대학의 글로벌 수준에서의 연구 경쟁력 제고와 인재양성 방안이 필요한데, 여기에 등장하는 키워드가 '서울대 10개 만들기'다. 서울대가 전국에 10개 만들어지면 우수한 지역 인재가 굳이 수도권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고, 지역 산업과 대학이 상생의 길을 찾게 되고, 결국 국가 균형발전이 이루어지리라는 시나리오다.

우선, 지역의 9개 거점 국립대학이 서울대 수준의 경상예산을 갖추는 데만 매년 약 3조2000억원의 추가 국가재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서울대 10개의 안정적 출범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2024년 현재 매년 5400억원의 국고 경상비 예산 지원을 받고 교비 예산만 9000억원에 이르는 국립 서울대도 여전히 재원 부족으로 외국 유수 연구소와 대학의 유능한 석학들을 초빙하지 못하며, 현직 교수들도 5~10배 이상의 연구비 지원을 받는 외국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고, 이를 지켜 보고 있는 학문과 연구 후속세대는 일찌감치 눈을 외국으로 돌리는 현실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의 실효성은 크게 의심된다. 이것이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정치적 슬로건하에 이루어지는 또 다른 포퓰리즘 국정의 시작이라면, 이는 국민에 대한 무책임한 희망고문이고, 나아가서 대국민 기만극이다.

현재와 미래의 핵심 과학기술 추진 주체인 AI 대표선수를 산업과 대학 연구 역량만을 고려해 투명하게 선발해 국가 산업과 경제의 견인차로 삼겠다는 국가전략과도 정면으로 모순된다. 올림픽의 성과는 금·은·동 메달 수로 결정된다. 냉정한 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참가에 의의를 둔 국민체육 저변 확대와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그런데 정부는 선택과 집중의 기본원리를 무시한 채 서울대 10개로 올림픽에서 성과를 내겠다고 한다. 진정 올림픽 메달을 원한다면 대기업뿐 아니라 기술력을 갖춘 중소·벤처 기업의 실전 경험, 그리고 국고 경상비 지원이 전혀 없이도 지금까지 고군분투해 온 유수 사립대학 인재의 경쟁력을 십분 활용하는 전략이 더 설득력 있다.

문제는 10개의 서울대가 아니고 10배의 경쟁력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차원이 다른 문제해결 방법이 필요하다. 정치 포퓰리즘 셈법에서 자유로운, 미래지향적이고 투명하고 효율적인 국가 산업·대학 정책으로 우리 대학에 날개를 달아줘야 한다.
대학이 우리 근대역사 속에서 국가발전을 이끌어 왔다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다시 한번 창의적 상상력으로 포효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10배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비전과 전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