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김규성의 인사이트] 시장, 정책, 정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19 19:02

수정 2025.08.19 19:45

정치부장
정치부장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쓸 돈이 없어 참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며칠 전 열린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에 참석해서다. 새 정부 세제개편안 발표 후 나온 국가재정과 관련된 이 대통령의 첫 공개 발언이다. 사실상 증세 기조로 짜여진 세제개편안을 내놨음에도 국가재정에 여유가 없다고 한 언급은 의미심장하다.

재정 상황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지만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세수 가늠자인 세제개편안을 놓고 엇박자다.

나아가 민주당 내부는 실용적 시장주의와 이념·규제 우선주의가 팽팽하게 대립 중이다. 당정은 세제개편안 발표 전 협의를 거친다. 곳곳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다른 현재 상황은 의아하다. 주식 양도세 대주주 부과 기준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정부는 "낮추겠다", 민주당은 대외적으론 "손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국무총리와 민주당 대표, 대통령 비서실장이 참석한 고위당정협의회에서도 "숙고하겠다"고만 했다.

나라곳간 사정은 여의치 않다. 정부의 실질적 재정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00조원 안팎의 적자다. 5년간 누적 적자가 511조원에 달한다. 직전 10년간(2010~2019년)의 적자 규모인 239조원의 두배가 넘는다. 지출은 증가했지만 재정 수입은 감소해서다. 올해도 110조원 이상 적자가 예상된다. 재정지출 대기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신성장 산업 투자, 인구구조 변화 대응에다 예상치 못한 방위비 증액 이슈도 있다. 경기가 개선되고 세수도 예상보다 더 걷히면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겠지만 올 성장률 전망치는 0%대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확장재정 방침을 분명히 했다. 법인세율을 1%p씩 인상하고 증권거래세를 다시 올리는 '나라살림 확대용' 세제개편안을 마련한 건 다 이유가 있다.

다만 시장과 정책의 충돌을 우려한다. 주식 양도세 부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강화하겠다는 세제개편안은 정책일관성을 훼손했다. 새 정부는 '코스피 5000시대' 비전을 제시하며 주식시장 활성화를 추진해 왔다.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를 명시한 상법 개정은 시작점이었다. 투자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와중에 '부과기준 강화안'이란 찬물을 끼얹었다.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를 정상화한다는 명분은 있었지만 정책 신뢰도 추락은 피해가기 어렵다.

예상대로 시장은 반발하고 있다. 이 대통령 국정지지도(리얼미터, 8월 11~14일)는 취임 후 최저인 51.1%까지 급락했다. 세제 혼선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전체 세제개편안 중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변경은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다. 대주주 범위를 넓혀도 세수증대 효과가 20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세수확대만을 목표로 했다면 민주당의 압박에 정부는 진작 물러섰을 것이다. 재정여건은 좋지 않고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서만 5년간 270조원을 투입해야 한다. 세입 확충은 발등의 불이다. 또 한번 밀리면 증세 기조였던 세제개편안 전체를 손봐야 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 정부도 진퇴양난이다.

정책만 유아독존하긴 힘들다. 시장의 지지를 얻거나 최소한 설득이라도 해야 정부는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국회는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한을 바탕으로 법을 만든다. 이 법을 바탕으로 정부는 집행을 하고 사법부는 집행이 잘됐는지를 판단한다. 그래서 흔히들 "국회의원은 미래의 일을, 정부는 현재의 일을, 사법부는 과거의 일을 담당한다"고 말한다. 자본시장 과세도 마찬가지다. 일관성 있고 예측가능성 높은 과세체계 전환을 추진해야 미래가 있다. 정치논리를 좇으면서 여야가 합의한 금융투자소득세를 2023년 시행을 앞두고 폐지한 실수를 되풀이하면 안 된다. 175석의 거대여당이라고 소통, 공론화 없이 '부자감세' '소득양극화' 등 프레임에만 의존하면 부작용이 크다.
표심만을 염두에 둔 포퓰리즘에도 미래가 없다. 정책, 시장의 충돌에 따른 혼란의 마무리는 정치의 몫이다.
정책 성과는 결국 정치에 달렸다.

mirror@fnnews.com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