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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봉법 빌미 주지 말자"… 원·하청 구조재편 나선 기업들 ['노란봉투법 후폭풍' 노사관계 리셋 (上)]

김준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8.25 18:50

수정 2025.08.25 18:58

하청 노조에도 원청 사용자성 인정
인사·노무조직들 지배력 검토 분주
하청 계약·외주전략 원점서 재검토
일부 기업은 컨설팅 자문까지 의뢰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의 국회 통과로 기업의 인사·노무 조직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노조법 개정안은 직접 계약관계가 없는 하청 노조에 대해서도 지배력 여부와 정도에 따라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원·하청 간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어도 '간접적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원청은 해당 하청 노조와 교섭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는 의미다.

일부 대기업은 이미 법무법인에 이와 관련한 컨설팅 자문을 의뢰한 상태다. 다단계 형식으로 다수의 하청업체를 둔 제조업과 건설업종을 중심으로 N차(1차 이상) 하청업체에 대한 사용자성이 지나치게 확장돼 경영환경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기존 원·하청 생태계 재편이 이뤄질 경우 원청 협력사에 대한 영향도 불가피할 것으로 점쳐진다.

■실질적 지배력·대응전략 재검토

25일 경영계·법조계에 따르면 노조법 2·3조 개정의 영향을 받게 된 기업들은 법 시행에 앞서 기존 하청업체에 대한 실질적·구체적 지배력 재검토에 나섰다. 현 사업구조에서의 잠재·간접 사용자성을 검토해 현재의 사업구조를 유지하면서 의제별 교섭에 응할지, 반대로 계약내용·거래처 다변화에 나설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법 시행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이 주어진 가운데, 기업 입장에서 단기간에 현실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분야는 하청계약 재검토 등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이달 중순 767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노란봉투법 통과 시 기업에서 고려 중인 대응방안 중 '협력업체 계약 조건 변경 및 거래처 다변화(45%)'가 가장 높은 응답 비중을 차지했다.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 2조2호 개정안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규정한다. 법조계는 이를 두고 사내하청뿐 아니라 사외하청까지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미 법원은 의제별로 원청이 N차 하청 노동자에게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경우 해당 의제엔 교섭에 나설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향을 점차 보여 왔다.

실질적 지배력 여부와 정도에 따라 지주회사·모회사가 계열사 또는 그 계열사의 하청회사와도 교섭에 응할 의무가 부여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지점이다. 만약 원청의 지배력이 사외하청까지 미친다고 판단될 경우 원청의 사용자성은 사외하청까지 확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조계는 지금까지 법원의 판례를 고려했을 때 △원·하청 간 동종 업무 여부 △도급계약서상 지배력 여부 및 비중·정도(하청에 대한 도급금액, 임금 산정·업무지시·조업일수 지정 등) △하청에 대한 채용규정·시설관리 관여 여부 및 정도 △하청업체에 대한 전산시스템 구축 여부 등이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을 따지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 경영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선 불필요한 지배력 요소는 삭제하거나 조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잘있던 하청에도 불똥 우려

이 같은 점을 고려했을 때 기업이 노조법 개정 법 시행 유예기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선택지는 한정적이다. 노사분쟁이 남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거나 기존의 원·하청 생태계를 재정비하는 정도다.

한 경영계 관계자는 "기존 노동위원회나 법원의 판결 등을 검토해 현재의 사용자 시스템 유지가 불가피한지 아니면 사용자성을 해소할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만약 현재 아웃소싱(외주·외부조달) 위주의 국내 주요 사업 구조가 인소싱(내주·내부조달) 위주로 전환·재편된다면 기존 하청 생태계·업체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법 개정 의도가 기존 아웃소싱을 금지하고 인소싱을 유도하는 것이냐는 협력사 측의 문의도 많다"며 "이렇게 된다면 원·하청 간 업무가 중복되는 관리직, 인사·노무 분야 일자리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노조법 적용은 산업 분야를 국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우려와 고민은 하청사가 즐비한 제조·건설업계뿐만 아니라 금융·정보기술(IT) 업계까지 파장이 미칠 가능성이 높다.

jhyuk@fnnews.com 김준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