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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이재용 회장이 내년 초 CES 무대에 선다면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03 18:54

수정 2025.09.03 18:54

조은효 산업부 차장
조은효 산업부 차장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해외출장 시 수행원 없이 직접 낡은 가죽캐리어를 끌고 다닌다. 형식과 겉치레를 좋아하지 않아 취임식도, 취임사도 없이 회장직에 올랐고 회장실도 부친 이건희 회장이 썼던 삼성 서초사옥 42층 집무실 대신 부회장 때부터 썼던 공간을 지금도 그대로 쓴다. 내실을 중시한다는 이 회장의 경영스타일 중 하나는 '침묵의 리더십'이다. 대통령보다도 더 큰 존재감을 발휘할 정도로 폭발적 화제성을 지녔음에도, 좀처럼 대외 메시지를 내지 않는다. 선대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비견된다는 올 초 임원교육 현장에서의 일명 '사즉생' 메시지는 직원 대독이었다.

이 회장이 공개적으로 마이크 앞에 선 것은 2022년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삼성 평택캠퍼스를 찾았을 때 환영사 외에는 없다. 선대 이건희 회장이 1983년 반도체 진출 선언, 1993년 신경영 선언 등 선언경영을 통해 변곡점을 만들었던 것과 비교된다.

온라인에서는 '올림픽보다 빡센 삼성 수련회' '이것이 삼성의 저력! 북한 뺨치는 카드섹션'이라는 제목의 2006년도 삼성 신입사원 수련회 영상이 화제다. 삼성이 소니를 제치고 세계 1등 TV기업으로 올라섰던 해이며,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절대강자로 굳히던 시기였다. 카드섹션 장면은 지금은 40, 50대가 된 삼성 직원들의 젊은 날 열정과 패기, 승천하던 삼성의 조직력을 상징한다. 삼성의 기세는 대단했다. '사즉생의 시대'였다.

20년이 지났다. 그때의 삼성이 아니듯, 그때의 삼성인들이 아니다. 이 회장의 사즉생 주문에 "과연 MZ세대들이 공감할지 의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 6월의 얘기다. SK그룹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출범식이 이재명 대통령의 첫 경제현장 행사로 낙점됐을 때다. 여권 관계자는 "AI와 관련해 삼성과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보여줄 게 마땅치 않았을 것"이란 전언이다. 삼성의 현주소다. 최근 이 회장의 해외 현장 행보가 잦아지면서 테슬라, 애플 등으로부터 대규모 수주실적이 나오고 있지만 과거 20년 삼성을 견인해 온 반도체, 휴대폰, TV라는 '삼각축'을 대체할 미래비전은 아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시장도, 삼성인들도 이 회장의 침묵의 리더십에 강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삼성을 향한 변곡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음 달이면 이 회장 취임 3주년이다.
10년을 내다보는 '비전 2035'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 회장이 내년 초 CES든 신년회 같은 무대에 올라 삼성의 미래비전을 직접 발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ehcho@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