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국익 연결되도록 세부협상 조율
아세안·중동 등 신흥시장 호조
CPTPP 가입 등 새 교역 틀 활용
국익 연결되도록 세부협상 조율
아세안·중동 등 신흥시장 호조
CPTPP 가입 등 새 교역 틀 활용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 외교·통상 시험대였던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되면서 정부는 임기 초반 최대 위기를 피해갔다. 쉽지 않은 협상이었지만 한국 정부가 "대체로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품목관세를 비롯한 세부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과 양자협상 강화 흐름 속에서 세계무역기구(WTO)를 축으로 한 다자무역 체제는 힘을 잃고 있고, 특정 시장 의존도가 높은 한국 수출구조의 취약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15% 관세…농축산물 시장 방어
7일 기준 한국의 대미 수출품에는 15% 상호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이후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조선·원전·항공·핵심광물 등 11건의 협력계약과 양해각서(MOU), 총 3500억달러(약 480조원) 규모의 투자방안이 발표되며 양국의 산업협력이 강화됐다. 그러나 대규모 투자와 기술·설비 이전 압박 속에서 국내 산업공백과 고급 일자리 유출 우려도 동시에 제기된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지난번 일방적인 투자합의와 달리 이번에는 상호협력이 추가된 점이 의미가 있다"며 "특히 원전 분야의 경우 공동 수주와 시공 참여 가능성이 열린 만큼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미국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고부가가치 기업들의 해외 이전이 늘어나면 국내 고급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순히 '퍼줬다'는 비판에서 벗어나려면 투자가 실제로 우리 기업의 성장과 신사업으로 이어지도록 협상을 치밀하게 해야 한다"며 "펀드 조성, 금융 지원 같은 장치를 통해 미국 진출이 곧바로 우리 기업의 사업 확대로 연결되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부 현안 리스크 여전
관세협상은 타결됐지만 세부 항목을 따지면 여전히 불확실성이 많다. 우선 한국은 합의한 자동차 관세 15% 인하를 아직 문서화하지 못했다. 지난달 25일 한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문서화를 시도했지만 이견으로 불발됐다.
반면 일본은 자동차 관세 15%를 낮추는 행정절차를 마쳐 시행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당분간 한일 간 자동차 관세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한국무역협회는 '한미 정상회담 주요 내용 및 평가' 보고서를 통해 대미 투자 구조·운영 방식, 농축산물 시장개방, 방위비 인상, 디지털 무역장벽 등 주요 현안에서 양국 정부의 언급에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 정부는 지난 7월 30일 무역합의 직후 "쌀·소고기를 포함한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은 없다"고 발표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한국이 농산물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기로 했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미국은 농민·제조업자·혁신가를 위해 시장을 계속 확대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언급했지만, 이는 7월 30일 무역합의에는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다.
향후 반도체·의약품 등에 대한 품목관세 부과 여부 역시 또 다른 협상 변수다. 최혜국대우(MFN)를 보장한다고 했으나 이 역시 문서화되지는 못했다. 미국은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자국 내 생산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어 필요할 경우 '관세 카드'를 반복적으로 꺼내 들 수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번 합의가 당장의 충격을 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주요 품목에 대한 미국의 관세 옵션이 살아 있는 한 통상 불확실성은 구조적으로 상존한다는 지적이다.
■특정 시장 의존 수출구조 탈피
정부는 이번 한미 관세협상을 통해 단기적 충격은 막았지만, 새로운 무역질서에 대비한 전략 마련은 오히려 더 시급해졌다. 최근 대미 수출이 위축된 반면 아세안·중동 등 신흥시장의 호조세가 전체 수출을 떠받치고 있는 만큼 시장 다변화가 위기를 흡수할 안전판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도 미국발 통상 불확실성이 높아져 무역 다변화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한 상황이다.
강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교역 방향 자체를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미국 요구에 맞춰 투자만 늘려서는 국내 기반을 지킬 수 없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업그레이드나 CPTPP 가입 등 새로운 교역 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협력의 균형을 맞추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김태황 교수 역시 "CPTPP 가입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사항"이라며 "가능하다면 유럽연합(EU)과 함께 가입한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aber@fnnews.com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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