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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 칼럼] 시설안전 AI가 뿌리내리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09.07 19:31

수정 2025.09.07 19:31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

태풍이 몰아치는 날, 교량 위에서 점검하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센서가 미세한 흔들림을 감지하고, 인공지능(AI)은 그 데이터를 분석해 균열이 확산될 가능성을 예측한다. 드론은 하늘에서 구조를 촬영하고, 로봇은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구간을 살핀다. 이렇게 모인 정보는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위험은 사전에 걸러진다. 이것이 우리가 준비하는 '시설안전 AI'의 현장이다.



왜 이런 준비가 필요할까. 기후위기는 해마다 거세지고, 기반시설 노후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준공 후 30년 이상 된 노후 시설물은 10년 후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폭우나 지진 같은 돌발변수 속에서 하루에도 수백개의 교량과 터널을 점검해야 하지만 육안 점검만으로는 위험을 선제적으로 막기 어렵다. 더 정밀하고 신속한 관리체계로 전환하지 않으면 국민안전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AI, 드론,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인프라 유지관리를 무인화·자동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서해대교에 디지털 트윈 모델을 구축해 가상공간에서 구조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국토안전관리원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AI 기반 도로관리 기술과 DNA(Data, Network, AI) 기반의 노후 스마트 유지관리 기술 등을 개발 중이다. 기술이 더 이상 연구실에 머무르지 않고 현장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실질적 수단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별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설안전 AI는 기술 하나로 완성되는 영역이 아니라 기업과 연구기관, 관리주체가 연결되는 산업생태계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센서와 알고리즘 개발에서 데이터 표준화, 현장 적용, 국가건설기준·시설물 안전지침 같은 제도 반영까지 모든 과정이 맞물려야 기술은 비로소 안전으로 이어진다. 데이터 수요·공급 기관을 매칭하고, 현장 상황에 최적화된 AI 의사결정 체계를 마련하는 일도 필수 과제로 보인다.

정부는 이를 위해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기술 실증의 기회를 제공하고 우수기업을 '시설안전 AI 강소기업'으로 선정해 성장을 뒷받침할 예정이다. 또한 '시설안전 AI 챌린지' 개최와 AI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확대해 산업 기반을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안전은 운이 아닌 시스템이 책임지는 가치가 되고, 점검은 사람이 아닌 데이터로 이뤄진다.

이 변화는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시설안전 AI가 뿌리 내리면 국민은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 대신 '안전이 당연한 나라'에서 살게 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국가 경쟁력의 토대다.
이제는 아날로그 방식의 시설물 관리에서 벗어나 AI 기반 스마트 안전관리로 과감히 옮겨가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시설안전 AI 산업 생태계 구축을 통해 새로운 수출산업의 토대를 마련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을 양성해야 한다.
정부는 산업계, 연구기관과 힘을 모아 첨단 안전관리 기술을 현실로 구현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전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