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지난 4월 한 시민은 '편히 쉬소서'라고 적힌 메모지를 마트 앞 패널에 붙였다. 3일 전 일어난 서울 강북구 미아동 마트 살인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숨진 60대 여성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 마트를 찾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뒤의 일이었다. 법원은 최근 사형이 구형됐던 미아동 마트 살인사건의 피고인 김성진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돌이켜 보건대 사형을 구형받은 살인범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일은 '상수'가 된 지 오래다. 칼부림으로 4명의 사상자를 낸 조선에게도, 등산로에서 3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자 폭행하고 결국 숨지게 한 최윤종에게도, 한 플라자에서 14명의 사상자를 낸 최원종에게도 그랬듯 말이다. 그 자체로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다. 무기징역을 선고받더라도 20년 이상 복역하면 가석방될 수 있지만, 가석방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면 사회에 복귀할 가능성을 사전 차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지점이 없지 않다. 사형제가 실존하나 사형이 선고되지 않으며 제도 개선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작년 말 기준 사형 확정판결을 받고 59명이 집행 대기 중이다. 한국은 지난 1997년 12월 30일 사형을 집행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하지 않고 있는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가다.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사형제가 합헌이라고 판단한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두고 세 번째 판단을 하고 있다. 사형제 대체수단 논의도 공회전을 거듭한다. 국회에선 10번째 사형폐지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무부가 '가석방 없는 무기형'과 관련해 제출한 형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살인을 저지른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그저 그를 감옥에 가둔 채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이 최선이냐고 묻는 유족의 속은 타들어 갈 뿐이다.
언제까지 상수를 바라보고만 있을 순 없다. 타인의 목숨을 훼손한 이를 어떻게 처벌할지 공들여 논의할 때다. 법과 현실의 틈을 메울 수 있는 수단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선언적 의미가 없지 않지만, 생명권은 헌법에 명시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다. 그것이 재판부가 살인을 저지른 피고인을 두고 사람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중요하고 존엄한 절대 가치라고 목소리 높여온 이유일 테다. 저녁거리 사러 갔다가 죽임을 당하거나 살려달라고 애원한 끝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될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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