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7579억원. 지난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경찰청이 집계한 코인사기 피해 규모다. 인구수 100만명 이상의 웬만한 특례시·대도시의 한해 예산을 훌쩍 넘어선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코인 관련 사기 검거 건수는 올해 상반기에만 991건에 달했다. 작년의 두배다. 경기 침체의 그늘에서 불안한 심리를 노렸다. 당국은 공식 기록된 피해 외에 숨겨진 규모가 더 클 거라고 본다.
이들이 겨냥한 것은 한결같이 '신뢰'다. 친구, 사회적 지위, 온라인 모임 속 친분을 미끼로 투자자를 끌어들인다. 초반에는 수익을 조금씩 나눠주며 의심을 지우고, 언론에 소개된 성공담을 덧붙인다. 정작 실제 투자 구조나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는 드물다. 실제 투자와 사기의 메커니즘을 모르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이들의 손에 넘겨버린다.
여기에다 수법은 매일 진화하고 있다. 과거가 단순 대리 투자였다면, 이제 인공지능(AI) 기반 자동 거래 플랫폼이나 해외법인을 내세운 스테이킹(예치) 서비스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서울 강남경찰서가 조사에 착수한 '젠메브'도 이런 유형이다. 지난 3월부터 인플루언서를 동원해 반복적으로 홍보하도록 영업했다. 투자하면 월 5~8%의 고정 수익을 지급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3개월여 만에 돌연 서비스 운영을 종료했고, 22억여원의 투자금은 증발했다.
새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를 돌려주는 고전적인 '돌려막기'도 여전하다. 돈이 불어나는 듯 보이지만 신규 유입이 끊기면 곧바로 붕괴된다. 반면 범죄의 뿌리가 해외에 있어 당국 대응은 쉽지 않다. 대부분은 점조직 형태로 이뤄지고, 여러 번 쪼개져 송금되는 '믹싱' 과정까지 거치면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다. 피해를 깨닫고 신고할 때쯤 사이트는 이미 폐쇄되며 증거는 사라진다.
솜방망이 처벌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난 2023년 한국 코인 업계를 강타한 하루인베스트 '먹튀' 사건은 검찰 추산 1조4394억원의 피해를 양산했으나, 올해 6월 1심 법원은 사기의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공동대표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범죄를 우습게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피해자 상당수는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다거나 어리석었다며 자책한다. 하루인베스트 피해자 1만6000여명 중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연이어 나오는 배경에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욕심은 잘못이 아니다. 누구나 개선된 삶, 보다 나은 경제생활을 꿈꿀 권리는 있다. 오히려 허술한 제도와 안일한 대응 등 구조적 관점에서 사태를 살펴봐야 한다. 불법 플랫폼이 꺼리낌 없이 광고를 낼 수 있고, 유명 인플루언서까지 동원 가능한 것은 사회가 멍석을 깔아준 셈과 같다. 이 같은 현실에서 일반인이 진위를 가려내기란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사후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허위 수익률을 내세우는 플랫폼은 등록 단계에서부터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해외 서버를 이용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국제 공조망을 강화하고, 피해자가 빠르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가상자산 사기는 개인의 실수로 끝나지 않는다. 한번의 선택이 가정을 무너뜨리고, 사회 전체의 신뢰 기반까지 흔든다. 이미 여러 차례 사례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세밀한 대응체계를 갖춰야 한다. 늦지 않았다. 가상자산 발전이 진행형인 만큼, 이를 이용한 범죄 수법의 진화도 끝없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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